뉴욕타임스는 창간 이래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주목할 만한 인물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Overlooked’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유관순 열사를 재조명하고, 2021년 10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 여사의 ‘늦은 부고’를 올렸던 이 시리즈에 2020년 1월 ‘정체성을 탐구한 예술가이자 작가’로 소개된 한국계 미국인 여성 예술가가 있다. 차학경. 테레사 학경 차.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으로, UC 버클리에서 비교문학과 미술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예술과 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스스로를 가리켜 “프로듀서, 감독, 연기자, 비디오와 영화작가, 공간설치예술가, 공연과 출판문학가”로 불렀을 만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횡무진 작품활동을 이어갔던 그는 1982년 11월 5일 불의의 죽음을 맞았다. 당시 그의 나이 31세.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저서가 된 <딕테>의 출간 직후였다.
그의 사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딕테>는 디아스포라, 여성주의, 다문화주의, 탈식민주의를 아우르며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관련 연구자 및 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영어와 프랑스어, 한국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와 군데군데 설명도 없이 자리 잡은 사진들을 통해 유관순, 잔 다르크, 성녀 테레즈, 그리스 신화 속 뮤즈들, 만주 출신인 작가의 어머니 허형순, 작가 자신 등의 삶을 복잡하게 교차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전통적 텍스트의 틀을 깨는 파격으로 책을 ‘읽는’ 독자를 끊임없이 멈춰 세운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멈춰선 자리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열린 텍스트에는 열린 마음과 열린 독법이 요구된다. 이 텍스트를 읽는 데 필요한 것은 그뿐이다.”라는 편집자의 말을 되뇌며 다시 책장을 펼친다.
어째서인지 제브리나는 하루하루가 지겹다. 눈가리개를 쓰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막내 이모는 제브리나가 ‘얼루룩덜루룩탈탈’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제브리나를 위해 막내 이모가 보내준 특별한 선물. 옷장을 열면 매일 새로운 옷이 나타난다. 어느 날은 초록 점퍼스커트와 검정 물방울무늬 블라우스, 또 다른 날은 폼폼 베레모와 오렌지 체크무늬 나팔바지까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옷들을 입어보니 지루했던 일상이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곧 다가올 생일엔 얼마나 화려한 옷이 걸려 있을까? 무거웠던 마음은 어느새 설렘으로 변한다.
<알사탕>, <장수탕 선녀님> 등으로 사랑받아온 백희나 작가의 신작 <해피버쓰데이>는 비슷한 하루에 지친 제브리나와 독자들에게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법을 알려준다. 시도해 본 적 없는 옷을 입어보고, 그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나거나 차를 마시고, 청소를 하고, 자전거를 타 보자.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멋진 일상이 된다. 매일이 생일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마법의 옷장이 없어도, 나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특별한 일임을 잊지 말자. 혹시 마음이 무거워 ‘얼루룩덜루룩탈탈’에 걸린 것 같다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밖으로 나가 걸어보는 건 어떨까?
히로시마 레이코의 대표작 <전천당>이 시즌 2로 새롭게 시작한다. 다년에 걸쳐 20권짜리 시즌 1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어린이 독자, 심지어 어른 독자의 마음마저 홀린 이상한 과자 가게의 새로운 이야기라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시즌 2에는 손님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책을 파는 곳 '선복서점'이 등장해 더 큰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즌 2 1권에는, 고민과 걱정을 제로로 만들어 주는 '제로 젤리', 다른 사람의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는 '체인지 링', 동화 속 장면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동화 벨', 무엇이든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맛있소다' 등 총 7개의 신기한 과자와 장난감이 등장한다. 가게에서 구입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로 맞바꾸는 손님, 설명서를 읽지 않아 영영 사라져버린 손님,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자신이 구입한 물건을 덫으로 사용하는 손님 등, 각양각색의 손님과 사연이 담겨 있다.
'전천당'이 있는 골목에 새로 생긴 수상한 책방 '선복서점'이 오픈하면서부터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진다. 책방이 '전천당'에 어떤 영향을 줄지, 책방 주인 젠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게 만들면서 1권은 끝난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 단숨에 매료시키는 재미난 스토리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 가독성 높은 문장. 시즌 2의 첫 시작에서도 전천당의 강점과 매력이 어김없이 발휘된다.
책상에 앉으면 우리는 종종 정작 공부와는 거리가 먼 행동들에 빠져든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필통 속 연필을 고르다 색깔별로 정리하고, 책상 위 물건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렬한다. 책을 펼치려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고,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정작 공부할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결국 4시간을 앉아있어도 실제 공부는 30분도 되지 않는 현실. 우리는 정말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공부를 시작하기 위한 핑곗거리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물론 절대적으로 공부에 투입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결국 성적과 합격의 성패를 결정한다. <모든 시험에 적용되는 33가지 진짜 공부법>은 연세대학교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현재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약 20년 동안 축적한 공부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연수남TV'를 통해 수많은 학생들에게 공부의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면, 이번 책에서는 유튜브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심화된 내용과 구체적인 사례를 담았다. 공부 과목을 바꾸어 집중력을 유지하는 ‘체인지 공부법’,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타이핑 공부법’, 효율적으로 암기하는 ‘새치기 암기법’, 그리고 키워드 중심의 ‘얼음 공부법’까지 실생활에 바로 적용 가능한 기법들이 가득하다. 또한,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 잡힌 암기법, 시간 관리 전략, 체력과 멘탈을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시험 직전에 활용할 수 있는 실전 팁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이 책 한 권으로 완벽한 공부 로드맵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할까? 공부는 단순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목표로 하는 삶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자, 자신감을 키우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시험 준비에 지쳐 있는 당신이 공부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은 분명히 답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극강의 효율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해 보자. 명심하라, 공부는 감성이 아니라, 철저한 효율로 완성된다는 것을.
따분함의 풍경에는 정형화된 요소들이 있다. 회색빛의 배경, 바쁜 현대인, 네모난 건물들. 똑같이 줄지어선 네모난 건물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건축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은 이 직사각형 건물투성이의 세계에 악평을 남긴다. 이런 세계는 "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조로움".
그는 단조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해롭다고 말하며 관대하고 인간적인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가우디의 까사 밀라를 필두로 에펠탑, 타지마할, 할그림스키르캬 등등 이 비정형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매일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손을 내민다. 이 건물들은 지루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손쉽게 허물리거나 다른 건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는 인간적인 건축이 환경에도 이롭다고 말한다.
따분함에 질색하는 책인 만큼 이 책 자체도 따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수백 장의 삽화, 다양한 폰트 크기, 글의 내용을 강조하는 장치들로 책은 매 장 넘길 때마다 참신한 재미가 가득하다. 영감을 주는 편집,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우주에서 가장 지루한 삶을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은퇴한 수학 교사인 그레이스의 올해 나이는 72세. 그레이스는 병원에 가거나, 기증받은 물건을 판매하는 중고품 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먼저 떠난 아이와 남편이 잠들어 있는 묘지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정원은 가꾸지 않은 지 오래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필요한 물건은 매주 배달 주문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완벽 차단한 채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 그레이스에게, 40년 전 같이 근무했던 음악 교사 크리스티나가 스페인 이비사섬에 있는 집을 자신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1979년에 예기치 않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던 것 말고는 아무런 추억도 교류도 없었건만 어찌 된 일일까? 해답을 찾는 수학 교사의 호기심은 일상에 작은 파문을 만들고, 결국 지중해의 섬 이비사로 그녀를 데려간다. 그레이스가 크리스티나의 죽음에 관해 파헤칠수록 모든 의문은 하나의 ‘전설’로 향하는데…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작가 매트 헤이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소설. 작가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성공 이후 번아웃과 우울증, ADHD 진단 등을 겪으며 글쓰기를 그만두고자 했다. 그런 그에게 영감을 되찾아준 것은 ‘뭔가 다른 일’을 찾아 떠난 스페인 이비사섬이었다. 20년 만에 방문한 이비사는 더 이상 클럽의 성지가 아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해초 군락지가 보존되어 있으며 고유한 전설과 역사가 숨 쉬는 곳이었다. 스스로 “탈바꿈에 가까운 변화”를 경험한 작가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화의 힘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고, 글쓰기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소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이유와 삶의 경이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마법 같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경찰 고덕은 우연히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되고, 살해당한 새끼 고양이의 진실을 파헤치며 천 년 집사가 될 운명에 놓인다. 천 년 집사는 세상의 모든 생명의 윤회를 돕는 존재로 고양이의 말을 한다고 전해진다. 한편, 인간에 의해 교배되어 탄생된 백호 티그리스와 유대를 나눈 소년 테오는 티그리스가 안락사당하는 순간 고양이의 능력을 얻는다. 테오는 복제와 근친 교배로 고통받는 생명들의 비극을 알게 되고, 이를 끝내기 위해 고덕과 협력한다.
고양이들은 아홉 번의 환생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얻어 인간과 소통하며, 생명의 존엄과 공존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러나 연쇄 킬러가 고양이의 특별한 능력을 악용하려 하고, 이를 막지 못하면 모든 생명이 위기에 처한다. 고덕과 테오는 아홉 번 다시 태어난 전설 속의 백 년 고양이를 찾아 모든 고양이 능력을 모으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며 위협에 맞선다.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넘나드는 이 이야기는 동물 복제, 생명 경시 풍조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교배되는 품종묘와 고양잇과 동물들... 반면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학대받고 죽어가는 길고양이. 비인간 동물들을 돕는 인간을 괴롭히는 인간들.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열다섯에 곰이라니> 추정경 작가의 글은 책장을 넘기기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는 것에 당혹스러운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미래엔아이세움의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2020년 첫 권을 선보인 이래, 초등 그리스 로마 신화 입문서로서 탄탄하게 자리 잡아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어 '삼국지'를 새로운 인문학 시리즈로 선정해 어린이 독자들이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소설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토대로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재탄생시켰다. 글과 만화가 적절한 분량으로 배치되어 있어 읽는 재미, 보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독자, 삼국지를 끝까지 읽어내지 못한 독자 모두를 사로잡을 만큼 흥미진진하여 흠뻑 빠져 읽게 만든다. 마지막에는 인물 관계도, 삼국지 집중 탐구, 삼국지 완전 정복 코너를 두어 학습적인 부분도 짚어준다. '삼국지가 이렇게나 재밌는 책이었어?'란 생각이 새삼 들면서 다음 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가우스틴을 처음 만난 것은 9월 초 바닷가에서 열리는 오랜 전통의 문학 학회였다. 모두가 글을 쓰고 독신이며 아직 책을 내지 못한, 스물에서 스물다섯 살 사이의 청년들이 모인 바닷가 작은 주점에서의 첫 만남 이후, 기묘한 편지를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어진 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세밀히 재현한 ‘과거 요법 클리닉’을 만들었다. 소설가인 ‘나’는 그를 도와 과거의 물건과 이야기를 모아 클리닉을 꾸미는 임무를 맡았다. 타자기와 초콜릿, 담배와 포스터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과거 이야기, 때로는 향기와 빛까지도 수집의 대상이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과거라는 동굴에 숨기를, 돌아가기를 원하는 때가 올 거야.” 가우스틴은 그것을 시간 대피소(time shelter)라고 불렀다. 과거에 다시 살 수 있다는 개념, 현재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과거로 대피하겠다는 욕망은 나이나 병의 여부와 무관하게 점점 더 많은 이를 사로잡으며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불가리아 작가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한 인터뷰에서 ‘시계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브렉시트라는 충격 이후, ‘위대한 과거’를 들먹이는 보수적 포퓰리즘이 만연한 세태 속 공중에 떠다니는 불안의 냄새를 맡으며 그는 세계가 이미 과거라는 팬데믹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변화를 감지하는 이토록 날 선 감각에서, 영원한 과거와 노스탤지어를 향한 그릇된 욕망이 불러올 위험에 대한 한 편의 놀랍도록 시의적인 사고실험 같은 소설. 중반부에 이르러 유럽 각국이 함께 회귀할 과거의 특정한 시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모습은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우화처럼 보이지만, 이어지는 사건들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이 퇴행의 끝이 끝내 어디에 다다를 것인지 불안과 긴장 속에 지켜보게 만든다.
우리는 뇌의 이성을 믿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이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 불리는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이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당신의 의식이 곧 당신일까?
그는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무의식에 의존하는지 알려준다. 뇌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작용을 남발하는가,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여러 갈래의 비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책은 온통 흥미로운 사례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감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선택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인지, 의식이 모르는 일을 신체는 어떻게 해내는 것인지. 뇌는 의식이 닿지 않는 우주 속에서 나를 구체적으로 조종한다.
데이비드 이글먼의 흡입력 있는 글쓰기는 이번 책에서 역시 독자를 빨아들인다. 신기하고 놀라운 예시들과 정리 잘 된 설명들은 무의식의 뇌과학이라는 어려운 세계로 진입하는 문턱을 낮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행동하고 감각하는 나를 완전히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페인트>,<셰이커>의 이희영 작가의「단군 설화」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소설. 비스족의 후계자 베아가 죽음의 숲 케이브를 지나며 성장과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단군 설화」를 알고 있다면 베아가 곰족을, 전사 타이가 호랑이족을 대변하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더불어 베아와 타이가 통과의례를 위해 들어간 죽음의 숲 카이브는 동굴(cave)을 의미한다. 전혀 다른 두 목적을 가진 두 젊은 세대가 죽음의 숲을 건너 원하는 바를 이룰지 지켜보는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이다.
후계자 베아는 자신이 왜 후계자로 정해졌는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은 비스족을 대표하기에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죽음의 숲에 가고자 했다. "두렵고 겁이 많기에 더 많은 것들을 배우려 노력"(p.226) 하는 베아에게 숲을 건너는 시간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테니 말이다. 한편 팔방미인인 타이는 안락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숲을 건너간 피프족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숲을 건너는 동안 성장하는 건 어느 쪽일까? 통과의례를 통해 성장하는 서사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한글 독자에게 익숙한 「단군설화」를 모티브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희영 작가의 문장들이 몰입감을 더해준다.
2025년이라는 숫자가 책등에 놓인 현대문학상의 70회 수상자가 소개된다.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2024)으로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의 산뜻한 미학을 보여준 김지연의 소설과 <수옥>(2024)으로 슬픔 한 방울의 둥그런 모양을 그려낸 박소란의 시가 수상했다. 소설 부문 수상후보작으로 구병모, 권여선, 송지현, 이주혜, 최진영의 반가운 신작 소설이 함께 실렸다.
김지연의 소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속 주인공 안지는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 없이' 이른 결혼을 하고 곧 이혼을 했다.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여자와 10년도 더 지난 뒤 한 카페에서 마주앉게 된 것은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아들과 보험금의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통속적이고 구질구질한 상황을 김지연의 소설은 진짜 삶을 대하듯 힐끗 바라본다.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해괴한 에피소드 몇 개면 삶을 다른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다.
2024년의 독자들이 힘든 한 해를 보낸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도 노화와 돌봄과 애도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갑자기 '그걸' 하지 않는 엄마와 산부인과에 동행하게 된 딸의 이야기인 구병모의 <엄마의 완성>을 읽을 때는 문장의 리듬감과 함께 들썩였고 돌봄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하찮게 대하는 권여선의 <헛 꽃>을 읽을 때는 인물의 가차없음에 얼굴을 찡그렸다. 송지현의 <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속, 딸과 연인을 잃고 상실을 나누기 위해 모인 인물들은 기어이 학교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장면의 실없음이 특히 좋았다. 나는 살아보겠다고 뭐라도 하는 사람들을, 지금 이 삶을 좋아하고 마는 사람들을, 혹은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삶 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소설들이 해답의 일부가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채사장의 지대넓얕이 5년 만에 완결 편으로 돌아왔다. 첫 권이 나온 지 10년 만의 완결이다. 시리즈의 앞선 책들에서 세상의 지식들을 소화하기 쉽게 들려주던 채사장이 이번 책에선 지식이 아닌 실천을 말한다. 시리즈의 끝에서, 그는 왜 실천을 말하는가?
그는 현대의 시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왜 채워지지 않는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 이유를 실천하지 않음에서 찾았다. 그리고 지식을 소화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실천은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면세계로 침잠하여 앎을 깨닫게 되는 것.
그리하여 이 책에서 채사장은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법을 안내한다. 그는 여러 단계를 통해 각자의 내면에 닿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연말, 연시 왠지 자신이 텅 비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할 것이다.
1974년 6월 21일, 미국의 지방 법원 판사 W. 아서 개리티 주니어는 모건 대 헤니건 재판에서 보스턴 학교 위원회가 공립 학교 시스템에서 ‘조직적으로 흑인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고 판결했다. 그러며 해당 도시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인종 차별 정책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백인 거주 구역과 흑인 거주 구역간에 학생들을 맞바꿔 버스로 서로 통학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결론지었다(’버싱’ 정책). 보스턴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에 있는 록스버리 고등학교와 백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에 있는 사우스 보스턴 고등학교는 1974년 9월 12일, 학년 초부터 상당한 학생들을 서로 맞바꾸어 통학시키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물론 예상했겠지만, 지방 법원 판사를 비롯하여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들의 자녀들은 두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데니스 루헤인 6년 만의 신작 장편 스릴러. 1974년 ‘버싱’ 정책의 도입을 둘러싸고 인종차별의 광기에 휩싸여 있던 보스턴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종차별에 대한 다층적인 탐구,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에 대한 세심한 묘사, 베트남 전쟁 이후의 후유증을 세밀하게 그리며 “데니스 루헤인의 가장 뛰어난 작품임이 틀림없다(WSJ)”는 찬사를 받았다. 딸이 흑인에게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버싱’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던 메리 패트는 딸의 실종, 흑인 청년 ‘어기’의 죽음 등의 사건을 겪으며 당시 보스턴을 장악하던 마피아들과 그들이 적극적으로 조장하던 인종 간의 적대감, 그리고 인종 차별의 다층적인 면모를?직시하게 된다. 점점 밝혀지는 진실의 크기만큼이나 커져가는 긴장감, 그리고 처참한 현실에 맞서는 메기의 처절한 사투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압도적인 페이지터너.
복잡한 서울의 1호선. 남영역 하행선 선로 너머에 큰 건물이 있다. 특색이 있는 건물도 아니기에 사람들은 건물을 인식하지 못한다. 여느 건물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인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 건물은 '국제해양연구소'로 불렸다. 벽돌과 철문, 좁고 긴 창문뿐인 그 건물에 물살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 그 건물은 해양연구소가 아니라 과거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대공분실은 1980년대 군부 독재 시기, 경찰청 산하의 대공 수사 전담 기관이자 악명 높은 고문 장소였다. 국내 최고 건축가의 설계 아래 고문과 취조 목적으로 지어진 잔인한 건물이다. 이 대공분실이 이제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이 되었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민주인권그림책 시리즈 8권을 출간했다. 그중에서도 <건축물의 기억>은 이 시리즈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최경식, 오소리, 홍지혜 작가는 각자의 그림체로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일들을 풀어낸다. 혹자들은 그 끔찍한 건물을 없애고 다 잊어버리자 할 수도 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고 국가가 국민에게 겨눈 서늘한 칼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열사들을 위해서라도 그 장소는 지켜져야 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잊지 않도록 건축물로써 역할을 해야 한다.
1980년대는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국가폭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투쟁 끝에 민주주의를 얻어낸 앞선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의 시작을 이 그림책으로 시작할 수 있다.
<몬스터 차일드> 이재문 작가가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진짜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열세 살 초등학생들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지만,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작가의 말’에 남겼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다미는 베스트 프렌드라는 말로 은하를 정서적으로 압박하고 조종하려 한다. 자신과 절친이었다가 절교한 지은이와 절대 말을 섞지 말 것, 크롭 티셔츠를 입고 화장할 것, 매일 함께 등교할 것. 다미는 우정을 빌미로 은하에게 여러 요구를 하고,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은하는 다미의 무리한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은하의 유일한 취미이자 해방감을 주는 춤마저 다미는 교묘한 방식으로 빼앗으려 한다. 점차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자각하게 된 은하는 다미와의 우정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다미는 SNS 프로필을 은하의 이니셜과 저격 문구로 바꾸고, 무리를 지어 따돌린다. 은하의 학교생활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작가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바와,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현직 초등 교사로서의 경험을 녹여내어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 각 아이들의 심리 상태, 관계 변화 과정 등을 실감 나게 그린다. 화장, 다이어트, 가스라이팅, 괴롭힘, 따돌림, 학교 폭력 등,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적절하게 다룰 뿐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속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그 아이들이 스스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이야기에 응원을 불어넣는다.
12월의 주말들, 칼바람 부는 광장에 울려 퍼지는 여러 음악을 들으며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느낀 많은 이들이 이런 질문을 품었을 것이다. 음악이란 뭘까. 음악은 우리를 데리고 무엇을 하는 걸까. 그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포괄적인 답변을 줄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책은 우리 삶의 사적인 층위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층위에서 음악이 무슨 일을 하는지 분석한다. 느낌, 사랑, 성, 사교성, 연대감, 공동체성의 주제로 음악이 해온 일과 음악의 잠재력을 파헤치는데, 저자는 '비판적 변호'로서의 분석을 강조한다. 이 책이 음악에 대한 낭만적 찬양에 그치지 않고 음악이 가진 기능의 부정적 작용까지도 관찰하고 지적함으로써 연구적 완성도를 가진다는 말이다. 그는 일상과 공공의 영역에서 음악이 정치, 사회적 배경과 엮이며 무엇을 해내거나 저지르는지, 또는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철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를 통해 책은 음악의 사회적 가치를 증언함으로써 평가절하적 통념에 완강히 저항한다. 말랑하게 읽히진 않지만, 음악의 기능에 대해 폭넓고 흥미로운 논의를 펼치는 의미 있는 책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기업가 가문의 상속녀 오리아나 디 페이트로가 프랑스 남부 휴양지에 정박 중이던 요트에서 괴한의 습격받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니스 경찰청 강력반은 수사에 착수했지만, 참혹한 범행 현장에서 범인을 밝혀낼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리아나는 결국 피습 열흘 만에 사망하고, 사건은 더욱더 미국에 빠졌다. 그로부터 1년 뒤, 오리아나의 남편이자 유명 재즈피아니스트 아드리앙의 저택에 아드리앙이 부인을 살해한 후 범행에 사용한 쇠꼬챙이가 보관 중이라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오고, DNA 감식 결과 쇠꼬챙이에 말라붙은 혈흔과 머리카락의 주인공이 오리아나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중요한 단서를 확보한 마르세유 검찰청은 유력 용의자인 아드리앙에게 감치 명령을 내리고, 수사팀장 쥐스틴은 아드리앙의 취조를 시작한다. 그리고 취조와 수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제3의 인물, 아드리앙의 숨겨진 연인으로 추정되는 아델의 존재가 드러나며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서스펜스 마스터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 소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아드리앙을 취조하는 쥐스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오리아나와 아델의 관점을 넘나들고, 독자는 화자들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오리아나 살해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사건의 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받지만, 마지막에 이르기 직전까지 사건의 진실을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다. 데뷔 이래 20년 동안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저자의 상상력과 교묘한 서술 속에 감춰져 있다가 순간순간 번뜩이는 반전의 단서들이 독자를 단숨에 결말까지 달리도록 몰입시키는 소설.
누수는 불행처럼 슬그머니 찾아왔다. 나무 천장 오목한 틈에 고여있던 물이 이윽고 뚝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습기가 책장을 습격해 낡고 소중한 책의 삼면에 퍼렇게 곰팡이를 피웠을 때. 진작 알아챘어야 한다고 후회해봤자 이미 사건은 벌어진 뒤다. 2023년 <쥐>,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으로 신춘문예 당선, 2024년 <언캐니 밸리>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전지영의 첫 소설집은 이 기척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집을 여는 첫 작품 <말의 눈>은 제주의 타운하우스 지붕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주의 국제학교로 학적을 옮기느라 타운하우스로 '피해자'인 딸 서아와 이주한 '수연'을 '가해자'의 부모 '지희'가 찾아온다. 내 딸이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일 수 있다는 가능성, 가해자인 내 딸도 피해자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두고 두 여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지붕에선 물이 새고 태풍이 오는데 목장에서 방목하는 말의 눈에 인간들이 비친다.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스타일리스트의 등장이다. 12월 내내 한국인의 밤낮을 사로잡은 그 '언캐니'한 불안의 징조를 소설은 미리 감지하고 경고한다. 살갗까지 다가온 불안을 물이 새는 지붕, 해무가 자욱한 바다, 어시장의 냄새, 비 오는 연못, 얼어붙은 언덕길로 비로소 알아채는 순간, 소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여기서는 말이야. 눈에 보이는 건 답이 아니야." (<쥐>, 63쪽)
<나무 집> 시리즈로 뛰어난 상상력을 갖춘 작가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앤디 그리피스가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앤디 그리피스와 그림작가 빌 호프가 협업하여, 제목처럼 '한계 없는' 모험기를 들려준다.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가 넘쳐흐르는 글과 그림이 찰떡같이 만나 이야기 속으로 단숨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행운의 토끼발'을 잃어버린 주인공 '나', 기니피그 '푸키'를 잃어버린 또 다른 주인공 '너'는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모험 차를 타고 '잃어버린 물건들의 나라'로 향한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모험 차는, 큰 나무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버리고, '나'와 '너'는 길도 잃고 목적도 잃고 '갈피'를 잃고 헤매게 된다.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나가는 여정에서 황소와 주먹머리 형제 일당, 책-갈피도 만나게 되는데…
각 페이지마다 두 작가의 글과 그림이 꽉꽉 들어차 있다.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 묘사, 깨알 같은 대사, 아주 소소하고 작은 그림조차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읽을거리, 볼거리가 풍성하고, 엄청나게 재밌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앤디 그리피스의 상상력은 정말 한계가 없는 것 같다. <나무 집>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의 작품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겨울은 한강을 읽기 좋은 계절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검은 사슴>과 자전적인 소설 <흰>과 작가가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한강'을 읽는다면 최신작으로 해주십사 각별히 소개한 최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꿰매 필사노트를 더한 한강 스페셜 에디션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출간되었다.
2024년 12월 한강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을 했다.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여덟 살 한강이 1979년 4월 공책에 적어둔 천진한 시에서 시작한 실의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아름다운 연설이었다. 이렇듯 한강의 작품은 삶과 죽음을, 현재와 과거를, 산 자와 죽은 자를, '검은 사슴'과 흰 무명천을 연결하며 이어져왔다. 스페셜 에디션을 작업한 디자이너 김이정 역시 '한강 작가님의 책을 하나의 시리즈로 엮어낸다고 상상했을 때, 실로 이어지는 모습이 떠올랐'다는 코멘트를 이 책의 물성에 덧붙였다. 차고 맑은 한강의 세계를 손에 쥐기 좋은 계절,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로 한 해를 마무리해본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근로소득의 한계를 체감한다. 초기엔 연봉이 오르며 희망을 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은 냉혹해진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 고민은 더 깊어진다. 물가는 가파르게 치솟고, 아이들 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금은 어깨를 무겁게 한다. 은퇴 후 노후 자금도 큰 걱정이다. 소득은 제한적인데 지출은 끊임없이 늘어나니 미래가 불안하다. 승진이나 이직으로 연봉이 오르기를 기대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기회는 줄어들고, 체력은 떨어진다. 이런 현실적 고민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안고 사는 무거운 짐이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 지금, 근로소득만으로는 더 이상 안정적인 삶을 담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모두를 짓누른다.
브라이언 페이지의 <소득혁명>은 이런 고민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평생 일만 하다 힘겹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보며 '자동 소득'이란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퇴사 47일 만에 백만장자가 됐고, 3년 만에 수천만 달러의 연 소득을 달성했다. 그의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성공한 이들의 검증된 방식을 철저히 따랐다. 부동산, 임대업, 디지털 마케팅으로 시작해 수익원을 다각화했다. 이제 그는 수십 개의 안정적인 소득원을 가진 '패시브프러너'가 됐다. 책에는 이런 성공으로 가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담겨있다.
이 책은 근로소득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라는 극단적인 조언이 아니다. 현재의 근로소득을 유지하면서 차근차근 자동 소득을 만들어가는 실용적인 방법이 담겨있다. 특히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소득 창출 자산 목록은 당신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당신의 삶이 불안하다면, 지금 이 책을 집어 들기 바란다. 3~5년 후면 당신도 근로소득과 자동소득이라는 두 개의 튼튼한 기둥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 이제 그 첫 걸음을 내딛을 시간이다.
<설전도 수련관>의 작가 김경미와 <똥볶이 할멈>의 그림작가 김무연이 함께 작업한 동화 <하늘 마을로 간 택배>가 출간된 지 1여 년 만에 후속작이 출간되었다. <하늘 마을로 간 택배>는, 주인공 시우가 자신의 생일날 엄마와 이별하게 된 후 우연히 하늘 마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엄마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작 <크리스마스 날, 하늘 마을에서 온 택배>는, 시우 엄마, 강아지 몽이, 고양이 사탕이, 할머니가 구름 열차를 타고 이승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의 사고로 트라우마가 생긴 시우, 강아지 몽이의 사고로 말을 잃은 연두가 마음을 서서히 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하늘 마을 사람들의 애정과 손길이 보태어져 시우와 연두는 각자 지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으며 단단해진다.
이별하여 몸은 떨어져 있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려주는 위로의 동화다. 감동적인 이야기와 귀여운 그림이 만나 더욱 빛이 나는 두 권의 책이, 모두의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훈훈한 마음으로 채워줄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세상에서 사라져도 언어는 우리의 흔적을 묻힌 채 여전히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언어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세대들의 흔적을 담으며 흘러온 망망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단어들 속엔 오랜 역사와 너른 맥락이 들어 있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단어가 품은 세계로 독자들을 초청한다.
책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상추는 날로 먹는 채소라는 뜻인 생채에서 유래되었고, 새끼 고양이와 새끼 돼지를 일컫는 단어가 없는 이유는 돼지와 고양이가 애초에 각각 그들의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뎅은 원래 전골요리를 뜻하는 단어였고 갈매기살은 가로막이라는 단어가 변화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원과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단어를 들여다보는 일이 재밌다는 저자의 말이 십분 이해간다. 단어의 오염, 문해력의 쇠퇴를 막아서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언어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일일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래 생각하며 따뜻한 애정을 싹틔우기 좋은 책이다.
세월이 흘렀고 시대의 등불 같던 스승들은 남은 과업을 미래 세대에 맡겨두고 먼 길을 떠났다. 기댈 불빛이 사라지면 어스름은 한층 공포스러워진다. 막막함 속에서 존 버거의 문장을 떠올린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한다. 기어코 도래한 지금의 시대정신은 '연결'. 우리가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종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스승이 과거에 남긴 말들은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직소 퍼즐처럼 꼭 맞는 지혜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서경식이 보내온 목소리가 지금 우리에게 도달했다.
이 책은 그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쓴 칼럼 모음집이다. 글을 쓴 날짜는 큰 의미가 없다. 고통, 기억, 연대, 저항, 진실에 대한 그의 반복된 질문들은 조금도 낡지 않은 채로 현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박함과 비속함을 거부" 하며, "진실을 계속 이야기" 하려 연말의 찬 바람을 맞고 선 이들에게 그는 "벗"의 칭호를 부여한다. 지금 연결을 느끼는 모든 이들, 서로에게 벗이리라. 벗들에게 이 책은 위안이자 힘이 될 것이다. 희망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벗의 존재가 그 자체로 희망이듯 이 책 또한 희망일 것이다.
한 아이가 태어났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커다란 손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다. 커다란 손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커다란 손과 함께라면 이 집에 계속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이는 창밖의 풍경에 매료된다. 자기와는 다르게 바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다른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가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커져가지만 커다란 손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강경수 작가의 철학 그림책 3부작을 완성하는 작품 <세상>. 이 작품은 공간감을 강조하는 창문 프레임 연출과 무채색 속 노란색의 대비를 통해 세상을 향한 가능성과 희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독자는 책 속 아이처럼 자신을 가로막는 벽과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된다. 독립을 준비하는 아이와 이를 바라보는 양육자 모두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앞으로 만들어 갈 빛나는 미래를 선사한다.
2020년 <히스테리아>의 번역본으로 전미번역상, 2020년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수상한 김이듬의 시집이 눈보라의 계절 찾아왔다. 시집을 여는 첫 시는 <블랙 아이스>. 포틀랜드에서 입양 기록 갖고 엄마 찾으러 한국에 온 '에밀리'와 '나'는 지번 주소를 들고 부천에서 에밀리의 엄마를 찾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시내에는 때마침 폭설이 쏟아지고... 엄마 찾는 에밀리와 엄마를 잃은 적이 있는 나는 빙판 위를 '춤을 추듯 걷는다 / 어딘지도 모르면서'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이 시들은 내게 위로가 됐다. 북극한파를 맞이해 눈보라 내리는 빙판길을 걸으면서 이들은 이 막무가내인 삶을 묵묵히 걸어나간다. '스스로 만든 손목 흉터 가리려고 소매 잡아 늘리는'(<나의 정원에는 불타는 나무가 있었고>) 사람이 자꾸 흉한 일이 생기는 친구에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부적 팔찌를 사주려는 순간, 인사동 골목길에 나란히 선 흉진 사람들의 마음이 연결된다. 책방을 잃고 엄마를 잃고 몸을 잃어도 밤은 찾아오고 밤이라면 명작을 쓸 수 있다. 막막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밤이 긴 이 겨울 읽기 좋은 시집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내 집 마련은 단순히 머물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근간을 구축하고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열망은 현실의 높은 벽과 마주한다. 특히 서울처럼 높은 집값이 당연시되는 곳에서는 내 집 마련이 꿈에서 좌절로 바뀌기 쉽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많고 많은 집 중에 내 집은 어디 있을까?"라는 질문 속에서 불안과 무력감을 느낀다. 집이 단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중심이 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부동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세대와 계층 간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왜 이토록 부동산에 관심을 쏟을까? 그것은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더 나은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경기도는 이제 단순한 대체지가 아니다. 교통망은 날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생활 인프라와 문화적 편의성은 서울 못지않게 발전하고 있다. 집값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넓고 쾌적한 주거 환경까지 갖췄다. 이 책은 경기도가 단지 '서울 배후 주거지'라는 역할을 넘어서 독자적인 가능성과 매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각 지역마다 고유의 특성과 기회가 가득하며, 투자 가치는 물론 삶의 질까지 높일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서울에서 높은 집값 앞에 좌절했던 당신이라면, 이 책을 통해 경기도에서 꿈과 현실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울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