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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떠니?" (9쪽)
여덟 편의 소설을 한 권의 소설집으로 엮은, 천선란의 첫 세계는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잘 모르는 영역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이들. 보지 못한 사막의 밤하늘, 무수한 별무리를 보고, 갈 수 없는 행성의 외계 생명체의 온기를 마주친다.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어놓은 선. 그 선 위를 가로지르는 마음들.
"그 애가 우주에서 죽었다고 단정지은 적은 없었다." (164쪽)
천선란의 소설이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우리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네가 죽지 않고 끊임없이 해수면 밑으로 떨어지고 있을 거라는 예감. 그러다 돌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불가능의 확신." (<레시>) 홀로 키운 딸 기주를 잃은 어머니 승혜는 바다를 잃은 지구를 위한 연구로 토성의 얼음위성 엔셀라두스로 향해 '레시'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구라는 '한계' 바깥의 가능성을 생각해내게 된다.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것들이 실은 영원히 잃어버린 게 아닐 수 있다면. 다신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어쩌면 나의 인식이 닿는 한계점, '이 곳'에서만 잠시 사라진 것이라면.
<그림자놀이>속 독백 역시 이러한 한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한다. "모든 대화는 초능력이야" (181쪽), "혹시 너도 그곳에서 아직 풀지 못한 관계를 풀어보려고 하는지" (188쪽) 우리가 이 곳에서 하고 있는 모든 교류가 실은 '초능력'에 가까운 것이고, 다중우주에서도 우리가 하게 되는 일이 '아직 풀지 못한 관계를 풀어보려는' 이 곳에 어울리는 노력이라면, 그 곳이 이 곳이고, 이 곳이 그 곳이어선 안 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성별 구분의 사이를 유영하는, 배꼽이 없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연애를 하고 헤어짐을 경험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물질의 사랑>) 우리가 기억하게 될 서정적인 우주를 보여주는 새로운 작가의 등장. 'SF의 시대'를 여는 작가들의 이름. 김초엽, 정세랑, 문목하. 그 이름과 함께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할 듯하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꾸는 작가 천선란의 등장. 2020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 <천 개의 파랑> 역시 올 여름 독자를 만날 채비를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