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귀국 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직 후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동화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내 이름은 구름이>로 등단하고, <바다를 건너온 피아노>로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 지원자로 선정되었다. 늦은 나이에 햇병아리 작가가 되어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동화를 쓸 수 있을까 베란다 꽃밭에서 흙장난하며 고민하고 있다.
몇 년 전, 하와이를 여행하다 ‘하와이 플랜테이션 빌리지’라는 곳에 들렀습니다. 옛 사탕수수 농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야외 생활사 박물관 같은 곳이지요. 그런데 오래전 우리 선조들도 그곳으로 건너와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조들이 생활했던 움막이나 통나무집도 보고 이발소, 병원, 목욕탕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농장 매점 앞에서 용이와 장쇠를 만났지요. 더벅머리 두 친구는 난생처음 콜라를 맛보고는 코끝이 찡해져 인상을 찌푸렸어요. 그러고 나서는 콜라병 뚜껑을 납작하게 만들어 신나게 딱지놀이를 했지요. 힘든 삶 속에서도 아주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용이와 장쇠가 왜 하와이로 떠났는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03년, 86명의 조선인이 처음으로 하와이 땅을 밟았습니다. 우리나라 첫 공식적인 이민자들이지요. 그 당시 하와이를 포와(布?)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그 후 약 2년간 7천여 명의 선조가 하와이로 건너가 여러 섬에 흩어져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떠나온 조국을 늘 걱정했습니다. 언젠가 꼭 돌아가고픈 조국인데,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실망이 컸지요. 그래서 국권 회복 운동에 앞장서 독립 자금을 모아 김구 선생님이 계시는 상해 임시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다 조국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지요. 하와이 선조들은 우리나라도 공업 기술이 발전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뜻을 모아 1954년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따서 ‘인하공과대학(현재의 인하대학교)’을 설립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하와이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만큼 발전하는 데 하와이 선조들의 희생과 땀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주신 도서출판 봄볕의 관계자 여러분과 멋진 그림을 그려 주신 오승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2023년 다시 찾아온 하와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