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수학하고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해 2008년 소설집 『유다와 세 번째 인류』를 출간했다.
2023년 출간한 장편소설 『무한복제기계』 로 2024년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순천에 거주하며 전업작가로서 인간의 본질과 인류의 삶에 관한 소설들을 집필하고 있다.
대학교 2학년 무렵 서클에서 비밀스럽게 마르크스주의를 공부 할 때였습니다. 정말 저를 괴롭힌 의문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마르 크스의 관점에 따를 경우 인류역사는 단계적으로 변화 발전해 왔지요. 모든 변화마다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대변혁이 수반되어 왔는데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과 이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의 관계에 있어서 물질적 변혁이 우선한다고 보았어요. 따라서 그 어떤 사회 구조의 변화가 있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기술이 먼저 도입되고, 이에 따라서 경제구조가 바뀌게 되며,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의식까지 바뀌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고대노예제 사회로 이전할 때 에는 농업혁명이라는 기술 변화가 있었습니다. 중세 농경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전할 때에는 기계와 공장의 도입이라는 어마어 마한 기술 변화가 있었죠.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전할 때에도 무언가 거대한 기술 변화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르 크스의 『자본론』 어느 구절을 찾아보아도 그런 놀라운 기술의 변화에 대한 묘사가 없습니다. 그 대신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남겼죠. ‘노동자여 공산주의자 정당을 만들어라! 열심히 투쟁해 나가면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라는 주장 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르크스의 위 대한 유물론이 『공산당 선언』에 이르러서 ‘의지주의’로 변질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 어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변화 없이 노동자의 의지와 투쟁만으로 사회주의 세상이 온다니요? 그럼에도 마르크스의 뒤를 따랐던 유수의 운동가들이 죄다 의지주의자로 변신하 게 됩니다. 공장제도가 별로 많이 존재하지 않았던 러시아에서는 노동자 정당을 아예 포기해버립니다. 그 대신 혁명가들의 엘리트주 의 조직인 ‘볼셰비키’만 있으면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의지 주의가 등장합니다. 아예 농민뿐이었던 중국에서도 농민이 사회의 사상으로 무장만 하면, 농업사회가 자본주의를 건너뛴 채 곧바 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괴상한 ‘의지주의’가 출현 합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마치 음식을 먹다 가 체했을 때처럼 무언가가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을 틀어막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야 마르크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 번에 걸친 프랑스혁명 가운데 두 번째를 직접 보고 느꼈던 와중이었습니다. 광주항쟁처럼 민중이 총탄 앞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루빨리 세상이 바뀌 어야겠다 싶어서 그 어떤 과학기술적인 변화 없이 사회주의가 오는 방법을 고안해냈던 것입니다. 아무튼 다소 성급하게도, 마르크스의 사상에 빈 구석이 남고 말 았지요.
저는 마르크스가 상상해낼 수 없던 빈자리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구상해낸 것이 거대한 기계, 무시무시한 기계 입니다. 그런 기계가 생겨나서, 그 기계에 기초한 사회의 종합적인 변화가 뒤따르는 것만이 마르크스가 기획해보지 못했던 세계의 변 화라고 구상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