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다.
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였으나 폐질환으로 5년간 병석에 있었다.
1934년 ≪신인문학(新人文學)≫을 간행하였으나 자본 부족으로 중단되었다.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여 ≪조광(朝光)≫지를 맡아 편집하였다.
1938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활동은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月下)의 몽(夢)'이, 그 해 11월에 '파몽(破夢)'·'낙목(落木)' 등이 시부분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백조≫ 창간호에 시작 '객(客)'·'하늘의 향연(饗宴)'·'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형(牛涎愛兄)에게'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1923년 소설 ≪반항(反抗)≫, 1924년 첫 시집 ≪처녀(處女)의 화환(花環)≫, 1928년 제2시집 ≪내 혼(魂)이 불탈 때≫, 1938년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 등을 간행하였다.
1940년 10월 6일 사망했다.
사랑은 인생의 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오아시스입니다. 누가 사랑을 저주하고, 누가 사랑을 싫다 할 리 있겠습니까? 만약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등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유행합니다. 더욱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사람이 적지 아니한 듯합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진정한 의미의 연애 서간집을 발행하는 것도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 작은 책자 속에는 요즈음 우리 사회 연애의 여러 가지 모양이 수집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은 사실 그대로의 편지입니다. 이것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 청년 세계의 사상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자는 현대의 저명한 문사들이 각각 한두 편씩 붓을 든 것이며, 따라서 그 내용은 단편소설이나 또는 소품문小品文으로도 당당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여둡니다.
1923년 1월 24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