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프랑스 릴3대학교(Universite de Lille III) 대학원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주대학교와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이다.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 한국서양문화사학회(현 세계문화사학회) 회장, 대학사학회 회장, 한국서양사학회 감사, 역사학회 평의원 및 감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프랑스 근대사연구』 『프랑스 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교육개혁사』 『살롱문화』 『소르본 대학』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프랑스의 절대왕정시대』, 공저로는 『혁명·사상·사회변동』 『유럽사의 구조와 전환』 『전환기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 『세계사의 만남과 이해』 『우리 시대의 언어와 문학』 『너의 마음, 눈을 밝히사』 등이, 번역서로는 『프랑스인의 아메리카 회상』 『프랑스 혁명과 교육개혁』 『부르봉 왕조시대의 프랑스사』 등이 있다.
황조근정훈장, 대전광역시 문화상(학술), 갈등관리전국 최우수상(대한노인회)을 수상하였다.
프랑스 대혁명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혁명이며,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주역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들은 미라보, 라파예트,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바래르 등 몇 명에 불과하고, 이름만 알려졌을 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여 여전히 프랑스 혁명과 혁명가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들어온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는 ‘공포정치가’, ‘살인마’, ‘흡혈귀’, ‘청렴공’, ‘최고 존재’ 등의 별명으로만 알려져 있으며, 그에 버금가는 베르트랑 바래르도 변호사, 문인, 정치가, 저널리스트,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점 외에는 프랑스 혁명과 연관하여 ‘테러리스트’, ‘기요틴의 아나크레온’, ‘로베스피에르의 꼬리’, ‘기회주의자’ 등의 이미지로 소개되고 있어 적지 않게 혼란스럽다.
이렇게 된 이유는 100만 권이 넘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자료를 모두 볼 수 있는 연구자가 없고, 프랑스 혁명이 1789년 7월부터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의 집권인 1814년까지 적어도 26년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거나 지켜본 혁명가를 발굴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혁명의 일시적 정황이나 결과만을 살펴 마치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하던가, 배를 만지면서 담벼락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다행히도 프랑스 혁명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지켜본 혁명의 추진자이자 파수꾼 한 사람을 찾았다. 그가 바로 베르트랑 바래르이다. 그의 활동을 통하여 프랑스 혁명을 조명해본다면, 좀 더 전체적으로 명료하게 프랑스 혁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평소에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을 심도 있게 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프랑스 혁명사 연구가 도입된 지가 오래되지 않아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소개되는 벽을 허물어가는 일을 역사학도가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프랑스 혁명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지켜본 혁명의 추진자이자 파수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적격인 인물로 바래르를 선정하였다. 따라서 프랑스사 전공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바래르의 역할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속살들을 끌어내어 혁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서술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