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조선사발의 선구자 고 신정희 옹의 장남으로 태어나 현제 양산 통도사 옆에서 신정희 요를 운영하며 사기장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맥이 끊어졌던 회령자기를 국내 최초로 재현하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신정희 옹과 함께 출연한 MBC성공시대, KBS 한국의 미 그리고 일본의 NHK를 비롯한 여러 방송과 신문에 작품세계가 소개된 바 있다. 또 매년 신세계 미술관 등 국내외 유명 화랑에서 초대받아 작품전을 열고 있다.
저서 『우리 사발 이야기』(가야북스 2005)를 펴냈으며 이 책의 일본어판 『이도다완의 수수께끼』가 2008년 3월에 출간되었다. 또 일본에 있는 국보급 조선사발을 한국인 입장에서 해설한 『고려다완』(타니 아키라, 노무라미술관 관장 공저)이 2008년 2월에 출간되었다. 2015년 일본 인문학술지 『기요(紀要)』에 ‘이도다완은 민가의 제기’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기장 덕으로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수출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현재 잊혀져 있다. 그들의 예술혼을 밝혀내기 위해 저자는 10년간의 집필 끝에 완성한 글이다. 이 소설은 2010년 『카미노 우쯔와』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현재 NPO 법기도자 이사장을 맡아 대한민국 사적 100호인 경남 양산 법기리 요지의 부흥을 위해 노력 중에 있다.
1994년 6월 17일 오전, 일본 국보가 된‘조선 막사발’을 보러 갔다. 쿄또 코호앙(孤蓬庵) 입구는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주지 스님과 일본 도예전문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든 두 번째, 세 번째 상자도 열었다. 네 번째의 검은 칠기 상자가 보다. 오른쪽 위에 금색 자로 ‘고려(高麗)’ 그 아래에는 ‘이도(井戶)’라 씌어 있었다. 뚜껑을 열자 자줏빛 비단이 나타났다. 자줏빛을 덜어내자 사발 하나가 소박하게 고개를 내었다.
전쟁까지 일으킨 사발. 평범했다. 비뚤어져 있었다. 한쪽이 수리되어 있었다. 너무나 가벼웠다. 이것이 과연 비천한 사기장 이 빚은 막사발이란 말인가? 그릇쟁이의 가슴으로 보았다. 그것은 ‘신의 그릇’이었다. 바로 조선 사기장의 혼이었다.
… (중략) …
“키자에몽 이도는 천하제일의 다완으로 일컬어진다. … 이것은 조선의 밥공기다. … (중략) … 이도가 일본으로 건너오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그 고향이다.”-야나기 무네요시(일본의 미학자) … (중략) …
도예가로서 나는 이 ‘막사발’의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 우선 조선사기장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한국에서 그분들의 흔적은 깨어진 사금파리밖에 없었다. 그분들이 끌려간 일본으로 갔다. 십여년 동안 그분들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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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평, 존해, 종전, 백파선, 심당길, 또칠이, 팔산…… 그분들은 비천한 사기장이 아니었다.
… (중략) …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도예가는 그릇으로 말하지 글로 말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펜을 놓았다. 10여년간 같이했던 조선 사기장들의 행적을 한동안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넋은 나로 하여금 기어코 글을 쓰게 만들었다. … (중략) …
2007년6월, 아버님이 저 세상으로 가셨다. 아버님의 혼과 함께 다시 글을 빚었다. 글에 아버님의 장인정신을 넣으려고 애썼다. … (중략) …
이도다완 대부분은 임진왜란 전남지방 민가에서 제기로 쓰던 황도(黃陶)다. 제상에메(밥) 올리는 멧사발과 반찬 올리는 보시기였던 것이다. 이도다완에는 조선 사기장의 혼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도(井戶)’는 일본인의 성(姓)이다. 조선 사기장의 예술혼으로 빚은 그릇에 일본인의 성이 아닌 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릇쟁이로 돌아갈 것이다.
이 책을 아버님 영전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