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구속주회에 입회하여 1939년 사제품을 받고 수도회의 요청에 따라 튀빙겐과 로마에서 전례와 교회법, 성서를 공부했다. 1949년부터 1989년까지 교황청립 알폰소대학원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윤리신학을 가르쳤다. 그 후 1998년 가르스 암 인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저서로 「그리스도의 법」, 「자유와 충실」 등 모두 104권을 남겼으며, 1,000여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헤링 신부는 요한 23세 교황의 요청에 따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준비위원으로 일했으며, 공의회 회기 중에는 「사목 헌장」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