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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노창수

출생:1948년, 대한민국 전남 함평

최근작
2023년 7월 <논증의 가면과 정신의 허구>

노창수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여 조선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대시학』 시 추천(1973),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1979), 전국논문 발표대회 최우수상(1981), 대학신문 문학논문공모 당선(1989), 『시조문학』 천료(1991), 『한글문학』 평론 당선(1991)으로 등단했다. 논저 및 평론집으로 『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 『반란과 규칙의 시 읽기』 『사물을 보는 시조의 눈』 『감성 매력과 은유 기틀』 『토박이의 풍자 시학』, 시집으로 『거울 기억제』 『배설의 하이테크 보리개떡』 『원효사 가는 길』 『붉은 서재에서』, 시조집으로 『슬픈 시를 읽는 밤』 『조반권법』 등이 있다. 한글문학상, 한국시비평문학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아산문학상을 평론 부문으로, 광주문학상, 무등시조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을 시조 부문으로, 현대시문학상, 박용철문학상, 한국예총문화대상, 한탄강문학상을 시 부문으로 수상했다. 전남대·강남대·조선대·광주교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대학 및 지자체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며,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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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논증의 가면과 정신의 허구> - 2023년 7월  더보기

나는 오래전부터 시조가 ‘서정의 파워’와 ‘운율의 룰’이란 자질에 함의한다고 여겨왔다. ‘서정’과 ‘운율’이란, 내용과 형식에 의해 구분하는 또 다른 이름이겠다. 둘은 분리되지만 통합되는 일은 더 많다. 시와 시조에서 ‘내용’인 ‘파워’와 ‘형식’인 ‘룰’을 통합해 보던 때, 교재와는 다르게 가르치던 국어 교사 시절을 생각한다. 난 ‘내용↔형식’의 교류에 터하여 학생의 수용을 바랐다. 한 텍스트를 두고, 상호 ‘수용⇄반응’하는‘ 학습자 중심’ 수업은 형식과 내용을 함께 수용함으로써 통합적 정서를 기를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시조와 독자, 비평과 독자도 이 같은 각 정서의 교호작용의 상에 놓인다. ‘서정’과 ‘운율’은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등가적(等價的)이다. 이에 반해 ‘파워’와 ‘룰’은 불평등과 평등, 또는 방임과 규율처럼 상등적(相藤的)이다. 시조평론은 시조와 독자의 소통에 완미를 바라며 ‘시인의 정서’가 ‘화자의 서정’, 그리고‘ 독자의 감정’에 작용함에 있어 등가냐 상등이냐 무관이냐 하는 그런 나사의 모양과 크기에 맞게 깎아가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여러 나사들로 제작·조립된 기계를 설비하고 지상(誌上)에서 수확한 낱알들을 씹기 좋도록 까끌한 부분들을 도정(搗精)해나가기를 번복해왔다. 내 평설에 의해 정미(精米)된 작품이 독자의 밥솥에 안쳐져 찰진 밥으로 상에 올려질 것인가, 그 긴장의 순간이 좋다. 그게 제3의 글로 드러나고 사람들이 호응해올 때 비평의 보람을 느낀다. 내 곡괭이 끝에 채굴되고 인용된 시조가 눈부신 광택으로 수렴되는 때는 미친 듯 힘이 솟아나 한 사나흘 굶어도 배고프지 않다. 해서, 오늘도 노트북 마당 앞에 부려진 그 암반 같은 작품들을 펜의 망치로 잘게 부수어 살피기를 반복한다. 이 고질은 잠을 반납하는 것은 물론, 패혈증 같은 병을 각오하게도 한다. 밤새 깊이 읽기에 신이 나 온갖 시집을 다 꺼내 읽거나 막장도 무서워 않는 광부처럼 기억의 단층을 뚫어 나간다. 그게 고통이라지만 내가 좋아서 하냥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쩜 이덕무가 말한 ‘간서치(看書痴)’로 유폐되어 스스로가 블랙홀로 흘러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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