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희극 배우이자 영화감독, 제작자.
1889년 뮤직홀 배우인 찰스 채플린과 해너 채플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술주정을 일삼던 아버지가 이혼 후 가족의 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후두염과 정신병을 얻어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채플린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만큼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의 연기 재능을 물려받아 일찍이 무대에 오르고, 1908년 열일곱 살의 나이로 프레드 카노 극단에 입단하여 희극 배우로 명성을 떨친다. 1913년에는 영화 제작자이자 키스턴 영화사의 설립자인 맥 세넷의 눈에 띄어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몸에 딱 달라붙는 연미복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네모나게 자른 콧수염을 붙인 친숙한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첫 장편영화 [키드The Kid]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뛰어든 채플린은 눈물과 웃음, 유머와 애수가 뒤섞인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이 냉전 분위기에 휩쓸리자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모던 타임스Modern Times]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 등 전체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인간 소외를 경계하는 사회 풍자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채플린은 영화인으로서 성공을 거듭하며 주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매카시즘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극심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자기 성찰적인 시선으로 인생과 예술을 돌아보게 된 채플린은 삶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예술혼을 담아 중편소설 [풋라이트]를 집필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기 대표작 [라임라이트]를 탄생시킨다. 노년에 이른 한 천재 배우가 보여주는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젊음과 나이 듦, 화려한 조명과 쓸쓸한 무대 뒤 풍경이 필연적으로 엇갈리는 작중 세계는 채플린의 굴곡진 인생을 그대로 담고 있다.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자신의 영화처럼 평생 행운과 불운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던 채플린은 1972년 자신을 내쳤던 미국 땅을 다시 밟아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5년 뒤 스위스에서 여든여덟의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