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photos |

|
|
|
상품평점 |
|
|
|
|
|
|
김형술1992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의자, 벌레, 달』 『나비의 침대』 『물고기가 온다』 『무기와 악기』 『타르초, 타르초」 등.
산문집 『詩네마 천국』 『그림, 한참을 들여다보다』 『구름 속의 도서관』 등.
저자의 말 |
| <구름 속의 도서관> - 2021년 10월 더보기 나는 가만히 그 검은 물들과 물속의 썩지 않는 문장들을 읽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수구는 내게 한 권의 경전이다. 내 안에 들끓던 언어들을 비워 가라앉히는 곳, 세상에 춤추던 온갖 욕망들이 바로 내 것이었음을 남김없이 확인하는 곳. 수건공장 굴뚝 위에 걸려있던 한 장의 잿빛 노을이 내려와 어깨를 덮을 때까지 나는 이 깊고 무거운 책 앞을 떠나지 못한다. 어린 저녁별들이 하나 둘 물 위로 태어나기 시작할 때, 붉은 십자가들이 하나 둘 어두운 하늘을 일으켜 세울 때까지.
헝클어진 말들이 빠져나간 몸속은 가벼운 만큼 허전하지만 그 안에 어린 별 몇 개가 여전히 떠 있다면 오늘 저녁 나는 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태어난 저녁은 다시 길 위에서 저무는 어둠이 되어 스러진다. 돌아보면 낯익은 의자 하나가 여전히 하수구에 발을 담근 채 어둠 속에 앉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