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은 지어지는 순간부터 이미 건축주의 것도, 건축가의 것도 아니다. 어떤 장소에 지어지든 한 건축물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건축물은 어느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교감하기 시작한다. 누구 명의로 지었든, 어느 건축가가 되었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건물이 어떤 영감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일기를 쓸 당시에는 가능하면 <하루>를 그대로 재현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일을 하면서 부대꼈던 사람들과 그때 한 이야기나 내 생각을 그대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왕에 쓸 거면 최소한 어떤 한 출판인의 일상을 통해서 출판동네와 책 만드는 사람들의 한 단면이라도 엿볼 수 있게 하자,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기는 <하루>의 반도 재현해 내지 못했다. 더구나 한 인간의 내면이나 사고는 세세히 들추어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