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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아호를 대충(大蟲)이라 짓고 천진한 아이처럼 웃으시다가, 1년 전 세상을 떠나신 조오현 시조시인의 시편과 함께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다음 숲에서 무엇이 되어 만나도 괜·찮·다. 내게로 오기 전 펼쳐지는 당신, 그리고 나였을 그대에게 흘린 눈물같이 써 내려간 이 시집을 바친다.
삶의 즐거움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 조오현(1932~2018), 「적멸을 위하여」 전문 |



| 이 책은 기독교를 믿는 나에게 운명 같은 저서이다. 대학에 자리를 잡기 전인 1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이렇게 읽었다』(반디, 2015)를 편저자가 되어 출간하고 서울 남부터미널 부근에서 오현 스님을 뵈었을 때의 일이다. 스님께서는 불현듯 현대시조에 나타난 불교 의식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시조 시인들이 불교적 사유를 가진 시조를 꾸준히 쓰고 있는데 그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불교 시조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불교의식을 드러낸 작가론이나 작품론같이 지엽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스님의 말씀은 현대시조가 태동하고 난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경향을 추적해가다가 보면 불교 시조의 ‘형식적 구성’과 ‘사유적 특질’을 시대마다 살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교를 잘 모르는 데다가 더욱이 기독교 모태 신앙을 가진 나에게 하시는 스님의 주문이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한번 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다음 해에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바쁘게 시간이 지나갔고 얼마 후 안타깝게도 스님의 임종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밤 나는 향을 피우고 설악산을 향해서 절을 올렸다. 밖에는 낙화 후 벚나무에 피어난 푸른 이파리들이 늦봄에 젖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봄비처럼 눈망울이 뜨거워지며 스님과의 인연도 밤 깊이 젖어 들어갔다.
다음 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설악산으로 가는 도중에 스님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 신흥사에 잠들어 계신 스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오는 절간에서 불교평론 주간인 홍사성 선생님을 만났다. 홍 선생님은 오현 스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차나 한잔하고 가라고 하셨다.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스님과 했던 약속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이셨고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의미심장한 기운만 맴돌았다.
그리고 2년 후 홍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그때 나는 그것이 오현 스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홍 선생님의 도움으로 『불교평론』에 2021년 3월부터 2년 동안 현대시조의 태동기와 개척기에서 디지털 세대, 불교 미학의 다원성에 이르기까지 8회에 걸쳐 ‘현대시조에 나타난 불교적 사유’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다.
연재하는 동안 불교와 시조에 대하여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사유할 수 없는 영역을 사유하게 되었다. 특히 오현 스님과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오현 스님이 남기고 가는 발자취 중에 하나로, 오현 스님의 생기가 들어가 있는 문학사적 연구가 될 것이다. 나는 글을 썼지만, 나의 손을 움직인 것은 오현 스님이기 때문이다.
문학사적 연구는 텍스트가 필연적으로 선행되기에 연구는 창작을 선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책에 텍스트가 되어 준 모든 시조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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