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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김용옥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8년,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안 (쌍둥이자리)

직업:교수, 철학자

최근작
2024년 10월 <[세트]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1~2 -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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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나는 혁명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성서적 사실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소박한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슬픈 쥐의 윤회

저는 진실로 하루하루를 망각 속에 흘려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여기 실린 글들은 제가 썼다는 기억조차 없습니다. 억지로 기억을 살려낸다면 희미하게나마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의 흔적밖에는, 의식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통나무출판사의 임진권 차장이 이 글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정성스럽게 긁어 모아 한 뭉치의 책 모양으로 된 원고를 내밀었을 때, 저는 당황했고 또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서, 남의 얘기를 읽듯이 읽어내려가면서 저는 이미 흘러가버린 나의 삶에 있었을 법한 매우 미세한 장면들을 낱낱이 재현시키는 새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없이 써내려간 이런 얘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것은 나의 21세기적 삶의 새로운 모험의 장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쓰는 “소설小說”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그 자의字義에 즉하여 그냥 “작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지만, 결코 현대문학이 말하는 “소설novel”이라는 뜻과 동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지금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며낸 이야기, 즉 픽션fiction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소설이라는 것을 소소한 이야기, 작은 이야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라는 뜻으로 써왔습니다. 그 최초의 용례는 『장자』라는 책의 「외물外物」편에 나옵니다만, 『한서』 「예문지」에 이미 도서분류의 큰 카테고리로서 “소설가자류小說家者流”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이 소설가들은 패관稗官에서 나오며 “가담항어街談巷語”를 기술한다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소설小說”이 있으면 반대 개념으로서 “대설大說”이 있을 법하나, 대설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반대 개념은 “대도大道”였습니다. 대도와 무관한 삶의 작은 이야기들이지요. 사실 “이야기”라는 것에는 픽션과 논픽션의 엄격한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의 언어와 개념을 빌어 서술되는 이야기인데, 진眞·가假의 명확한 구분이 있기 어렵지요. 이야기의 목표는 의미와 재미이지, 실상에로의 접근이 아닙니다. 나의 소설은 나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나의 삶이라는 화엄을 구성하는 무수한 꽃잎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의 실재성은 논의의 대상이 되질 않습니다. 소설가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꾸며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완벽한 가공일 수가 없습니다. 소설가 본인의 삶의 체험을 완벽하게 단절시킬 수는 없는 것이죠. 나는 분명히 철학을 하는 대설가大說家 이긴 하지만, 나의 삶의 하루하루는 짙은 소설로 꽉 차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소설에만 전념한다면 여기 실린 이야기와 같은 짙은 담론을 매주 한 편씩은 쓰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만큼 철학자의 삶은 농도가 짙습니다. 그래서 또 소설(소소한 이야기들)을 쉽게 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죠. 나는 이 소설들이 너무도 미세하게 나의 느낌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보여주기가 좀 민망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철학적 담론의 출판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정도이리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미 숙지된 글들이고, 또 너무도 짙은 의미를 던지는 글이래서 오히려 철학적 대설大說(큰 구라, 거창한 담론)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쉽게 독자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지인들이 많아 출판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독자 제현들께서 이 소설들로부터 의미와 재미를 담뿍 향유해주신다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한 학인으로서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저자 서문에서

이성의 기능

화이트헤드의 조어중에 `완벽한 사전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언어가 완벽한 사전처럼 정의된 구조 속에서만 의미의 역사성을 답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기 위운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에 대한 어떠한 사전도 완벽할 수 없다. 그것은 정직으로 고착될 수 없으면 정의대 대로만 쓰여질 길이 없다. 새술은 항상 새부대에 담어야 하듯이, 새로운 창진적 생각은 끊임없이 엉너의 규정된 의미의 루트를 파괴한다. 나는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철학의 성격을 체험적으로 나 자신의언어속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에 과감할 것이다. - 역자의 말 중에서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맹자』는 인간됨의 출발이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맹자』라는 서물(書物)에 담겨 있는 맹자의 생각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맹자』라는 책을 읽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의 공통감(共通感), 뭐 그런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 안에서 스스로,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푸른 벌판을 아장아장 거니는 아기도 돌멩이나 썩은 나무 조각보다는 꽃이나 나비와 같은 생명체의 정교함에 더 호기심을 보이거나, 그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성향이 있다.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이 인간의 염색체에 내재하며, 결국 인간은 그러한 감정을 통해서 고귀하게 된다는 것을 설파한 생물학자 윌슨의 ‘바이오필리아’도 아마 그 같은 인간의 조건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을 확충해나가면 저기 저 북한산에 우뚝 서 있는 인수봉 바위도 결코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인수봉을 느끼고, 인수봉이 나를 느끼는 느낌의 홍류 속에 우리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것이 있다. 하물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느낌이야 새삼 말해 무엇하랴! 도덕이란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기 위해 만든 규범윤리가 아니다. 도덕은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이며, 그것은 전 우주 생명과의 일체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도덕이야말로 동아시아 문명이 서구 문명을 리드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이며, 그것은 정신 가치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물질적 생존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우리는 도덕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잘 살 수 있다.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도덕이야말로 중국 문명이 21세기 인류 역사를 선도해 나가는 기준이 되어야 하며, 조선 민족이 통일조국을 창조하여 인류에게 희망을 던지는 횃불의 연료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박경덕은 내 주변 사람들이 흔히 ‘자용선생(子庸先生)’이라 부른다. ‘선생’이란 무협소설에 나오는 ‘와룡선생’을 일컫는 기분으로 부르는 애칭이고, ‘자’는 내 제자라서 붙는 접두사고 ‘용’은 그가 『중용(中庸)』을 사랑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자용선생은 MBC 전성시기에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싱글벙글 쇼>에서 매일 강석과 김혜영의 유쾌한 입심을 통하여 쏟아진 언어의 주인공이다. 그 시시콜콜한 각 방면의 코믹하고도 신랄한 언어들을 23년 동안 혼자 골방에서 주조해낸 마술사가 바로 자용선생인 것이다. 그 자용선생이 요즈음 동양고전에 푹 삶아져서 말랑말랑 익어가고 있다. 그 첫 성(聲)으로 내놓은 작품이 바로 『맹자』를 주제로 한 이 책이다. 방송계에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그의 교육을 받았거나 직·간접으로 그와 연이 안 닿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의 섬세한 표현력과 연출력은 사계의 고전이다. 그의 마법 같은 손에서 펼쳐지는 동방고전의 세계가 우리나라 정치·사회·경제·예술 등 모든 분야에 새로운 심미안과 생명력과 도덕성을 부여해줄 것을 확신하며 격려와 추천의 간곡한 마음을 여기 담는다. - 한선(寒蟬)이 처절하게 울어대는 이 밤, 낙산 천산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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