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놓쳤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놓치고서도
나는 놓친 줄을 몰랐다
비도 놓치고, 바람도 놓치고…….
돌아다보니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붙잡기 위하여 산다는데
지금 손안에 붙잡고 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 보이지 않고
손금만 늘어간다
둥지를 잃고 바람의 구두가 되어.
몽골과 티베트 거쳐
갠지스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탄자니아 세링게티
그리고 사하라와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돌고 돌아보았다
내가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
이념과 이념이 저마다 다르지 않았으며
개와 염소 사람과 동물도
단지 모습과 색깔만 다를 뿐이지 않았던가
산으로 간 사람은 산에서 만나고
강으로 간 사람은 강에서 만난다고 했다
이제 떠나지 않고도 만나는
인연이고 싶다
제발 나 좀 붙잡아 줘!
아프리카 세링게티에서
나의 새, 나의 시
새를 그리고 싶었다
아니, 꿈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보아도
내가 그린 것은 새도 꿈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고
새를 닮은 나무라고 했다
나는 내 그림이 미워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마음 고쳐먹고 새 그리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새를 그리면 그릴수록
나무 그림만 더 늘어났다
이제 다 던져 버리고 새 그리기를
그만두고 그냥 살기로 했다
한동안 내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안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린 나무가 자라
숲이 되어 새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 숲에서 불면의 밤으로 그려낸
내 시편들 새가 되어 노래하고 있다.
2021년 9월
줄포, 아로마에서 강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