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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번만이라도 틀어쥔 고삐 놓고 말이 이끄는 길 따라 갈 수 있다면. 다다를 수 없는 그곳에서 제대로 한번 실패할 수 있다면.
부끄럽지만, 이 부끄러움 위에서 더 지독한 부끄러움을 찾아보려 한다.
2013년 봄 |
| 말과 말 사이에 숨을 불어넣고 싶었다.
생각의 고삐를 늦추고
말을 앞에 세우고자 했다.
의도와 결과는 어긋날 수밖에 없으니
시도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밖으로만 떠돌던 시를
몸 가까이 조금 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
| 16년 만의 복간이다.
관 뚜껑 닫은 지 오래되어 살은 흩어지고 뼈만 남았는데
새삼 불러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복간에 즈음해,
오늘날의 감수성에 어긋난 구절들을 걷어냈다.
읽어보니 압력 장치가 고장난 밥솥에서 지은 밥처럼
푸슬푸슬한 느낌이 든다.
찰기 없는 불편한 밥이 몸에는 더 좋다는
세간의 말을 믿기로 했다.
분골을 수습하고 일어서니
내 일이 아니라 여겼던 내일이 바투 다가와 선다.
2022년 겨울 - 개정판 시인의 말 |
| 타다 만 삭정이로 얼기설기 얽은 둥우리로
날아든 새
핏방울 묻은 한 소절 노래를 부르다 사라진 새
그가 남기고 간 깃털의 온기를 주워
여섯번째 가난을 엮는다
손차양하고
눈앞에 펼쳐진 먼지의 길을 바라본다
아득하다
알지 못할 그곳은 아직도 멀다
2022년 겨울 |
| 잡초 무성한 두어 평 묵정밭에서 농사랍시고 지어 펼쳐놓으니 온통 뉘, 싸라기뿐이다. 죽 한 그릇도 못 끓일 좁쌀 한 줌을 세상에 내어놓는 심정이 참담하지만 어쩌랴, 텅 빈 뒤주에 쥐새끼들만 들락거리니 이 가난한 시업에 무엇을 더 보태고 뺄 것인가.
생명과 반생명의 극단을 오가며 베낀 노래와 신음의 언어로 8년만에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
| 천천히 구르는 바퀴가 되리라.
수많은 자국이 겹쳐진 길 위에 몸을 누이고
터진 상처에 긴 입맞춤을 하리라.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던져 만든 돌탑.
작고 못생긴
돌 하나를 두 손으로 올려놓는다.
1992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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