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시를 쓰면 빨리 회복되었다.
이럴 때는 옛날 고향 집
언덕배기를 뒤덮은 대숲을 떠올렸다.
죽창처럼 상처를 주는 시가 아니라
대꽃처럼 향기를 뿜는 시를 쓰고 싶었다.
대꽃을 피운 후에
곧바로 대는 삶을 마감하지만
대꽃 같은 청정한 시를 쓰고 죽는다면
후회는 없으리라.
2022년 7월
유진택
어쩌다가 시를 알아 이 고생인가.
시라면 관심조차 두지 않는 가족들 앞에서 죄인처럼 숨어서 시를 쓴다.
밥벌이 때문에 상처 받았던 가슴이 시를 쓰면 풀어진다.
시를 보면 넌덜머리가 나지만 헤어지지는 못하겠다.
어차피 시와 한몸이 되어 살아가야 할 팔자다.
2016년 가을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인 『연금술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살렘의 늙은 왕이 산티아고에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 줄 알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도 간절히 원해 시집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집을 낼 때마다 나무에게 미안하다. 나무는 한 개인의 탐욕을 위해 얼마나 중노동에 시달렸는가.
종이를 대주느라 밤낮없이 고생했을 나무에게 졸지에 죄인이 되었다.
내 시집을 위해 쓰러진 나무의 제단에 바칠 흰 꽃 대신 시집을 놓고 용서를 빈다.
뒤돌아보니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시집을 엮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나 지나버렸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말을 실감할 수가 있다. 또 꾸역꾸역 시를 엮는다. 돈도 되지 않는 시를 붙잡고 늘어지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떤 때는 절필하고 싶은 생각이 종종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목숨 다할 때까지 붙잡고 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 지층처럼 나이가 쌓일수록 정서는 고갈되고 텅 빈 마음을 붙잡고 시를 짜내려니 육신가지도 지쳐버렸다. 벌써 흰머리가 늘어나 반백이 되었다. 영혼마저 바싹 말라 버렸다. 그러나 이 시집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다면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시집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한 가족들에게도 넌지시 시의 향기로 고마움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