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퇴고하던 중 코로나로 며칠을 앓았다. 정작 팬데믹 때는 그 많은 환자를 대하면서도 끄떡없었는데, 뒤늦게 찾아온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사나흘을 누워 지내며, 오랜만에 그들을 떠올렸다. 약도, 백신도 없던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텅 빈 무덤 같은 건물에 갇혀 꼼짝없이 죽어간 이들.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인류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 중 한때, 그들은 외부에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묘비가 보이지 않는 허공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은, 긴 역사 속에서 사피엔스종이 겪은 모든 위기의 끝자락마다 세워진 묘비들의 행렬 맨 뒤에 쓸쓸히 서 있지 않을까.
소설을 쓸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이 깨닫는다.
작가는 신이 아니라는 것과
등장인물에겐 그들만의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 속 지명과 장소, 시대, 그 밖의 모든 고유명사가
실제 그 자체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마치 허구가 오직 허구만을 가리키지 않듯.
(중략)
우주를 떠다니던 무형無形의 이야기가
‘책’이라는 실재實在로 탄생하는 과정은 언제나 내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은어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친구네 집 문이 열려 있다.
하지만 너무 깊은 밤.
괜히 문을 두드렸다간 그의 잠을 깨울 수도 있단 생각에, 사려 깊은 사람은
은어만 놓아두고 조용히 걸어 나온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하이쿠다.
아끼고 아껴가며 읽고 또 읽고 싶은 그런 하이쿠.
밤이 깊다.
아직 잠들지 못한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꿈속에서 나는 그들의 머리맡에 반짝이는 은어를 놓아둔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