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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하다 보니 이순을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진흙탕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더러 벌 나비가 붕붕 나는 꽃길도 만날 수 있었으니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 여깁니다.
여기 글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문우들과의 문학기행 그리고 지인과 가족과의 국내외 여행 이야기입니다.
여행 원고를 정리하면서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새삼 깨닫습니다. 천태산 여여산방에서부터 시작된 발걸음은 읍내 여여글방과 삼봉산 여여산방까지 십여 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여행을 함께했던 몇몇 지인은 글 둥지를 떠났습니다. 또 몇몇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한평생 짓던 인삼 농사를 접었고,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엄니는 거동이 불편해 지난해 요양원에 입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딸내미는 시집을 가고, 아들내미도 결혼을 합니다. 어찌 그뿐이겠는지요.
여행하면서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논어』, 「옹야」)는 걸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 있으니 길을 가는 것과 같이 여행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2025년 새해 아침, 천태산 은행나무를 찾았습니다. 한때 천태산 은행나무에 기대어 살다 죽으면 여한이 없을 거라 여긴 적이 있습니다. 천태산 은행나무는 여전히 생의 기쁨이며 희망이고 안식입니다. 천태산 은행나무처럼 하루하루 ‘생을 다시 찾는 여행’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금강경』)지만 ‘지금, 여기’ 진지한 삶을 체득하는 생생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섭니다.
길을 가는 자여 행복하여라, 메아리가 들려 옵니다.
2025년 정월 여여산방에서
양문규 |



| 불혹의 나이에 에움길 돌고 돌아 천태산 은행나무 품에 안겨 살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삶터를 찾아 떠나야만 하는 비애가 컸다. 그것은 각박한 현실의 세파에 밀려 쫓겨난 눈물이 아니라 꿋꿋하게 지탱하던 마음의 집이 한순간에 허물어진 것이었다.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게 자연의 순리라 믿는다. 때가 아닌 때에도 떠나야 하는 것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긴다. 내게 영국사와 천태산 은행나무와 여여산방이 그러했다.
오랫동안 여여하면서 여여하지 않을 때 많았지만 또한 여여하지 않았던가. 꽃이 피고 지고,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쳤다. 그리고 그 자리 또 꽃이 피지 않았던가. 시집 『식량주의자』 이후 7년여 만에 펴내는 『여여하였다』 역시 그러하다.
지금 여기 삼봉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산지 어느새 1년, 첫눈이 소복하게 내리고 있다.
2017년 소설(小雪)
삼봉산 여여산방에서 |
| 지난봄 내내 나는 은행나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 황소 울음 같기도 하고 능구렁이 울음 같기도 한, 그건 생명의 소리였다. 큰 울음만이 큰 사랑을 키우는, 은행나무는 누대에 걸쳐 좌절과 절망을 제 울음으로 감싸고 누군가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었으리라. 나의 시에도 큰 '울음'이 배어 있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어 다가가고 싶다. |
| 열아홉 꽃봉오리는 채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렸지만 그가 남기고 간 민주화의 열정은 아직 식을 줄을 모른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절절한 청년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오는가. 이제, 그 어둠은 희생자 정법영이 지핀 횃불로 밝혀져 우리에게 되살아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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