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끌어안고 살던 것들을 트럭에 싣고 전주에서 예천으로 옮겨 왔다. 작년 초부터 마당과 텃밭이 있는 외딴집에서 산다. 풀이 너무 빨리 자라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풀들과의 전쟁이다. 좋은 분들이 와서 닭장을 만들어준 덕분에 열댓마리 닭들이 쑥쑥 자라고 알도 잘 낳는다. 연못의 잉어 두마리가 사랑에 빠졌다. 수백마리 새끼를 쳐서 나는 수백마리 잉어 새끼의 보호자가 되었다. 연못에 먹이를 던질 때마다 그들의 주둥이가 ㅤㅃㅛㄱㅤㅃㅛㄱ 소리를 낸다. 틈이 나면 차를 끌고 돌을 주우러 다니고, 울타리 가까이 내려오는 고라니의 거동을 엿보고, 봄에는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고, 가을에는 봉투에다 꽃씨들을 받고, 헛간 벽에 무시래기를 내걸고, 말수를 줄이고,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코로나19로 세상의 발걸음이 멈추었거나 세상의 관절이 뒤틀려 있다. 이 와중에 간신히 책 한권을 낸다.
2021년 12월 예천에서
시에 미혹되어 살아온 지 30년이다. 여전히 시는 알 수 없는 물음표이고, 도저히 알지 못할 허공의 깊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무엇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으므로 다만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 것으로 소임의 일부를 다하고자 한다. '시적인 것'의 탐색이야말로 시로 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접근 방식이라 믿는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모든 시적 담론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 누구라도 시의 성채를 위해 '시적인 것'을 반죽하거나 구부러뜨릴 수도 있다. 이 책은 내 누추한 시 창작 강의노트 속의 '시적인 것'을 추려 정리한 것이다. ('머리글' 중에서)
시에 미혹되어 살아온 지 30년이다. 여전히 시는 알 수 없는 물음표이고, 도저히 알지 못할 허공의 깊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무엇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으므로 다만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 것으로 소임의 일부를 다하고자 한다. '시적인 것'의 탐색이야말로 시로 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접근 방식이라 믿는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모든 시적 담론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 누구라도 시의 성채를 위해 '시적인 것'을 반죽하거나 구부러뜨릴 수도 있다. 이 책은 내 누추한 시 창작 강의노트 속의 '시적인 것'을 추려 정리한 것이다. ('머리글' 중에서)
초판이 나온 게 1999년, 따져보니 벌써 십이 년째다. 무심코 붙인 책의 제목은 그 이후로 나에게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었고, 또 기이하게도 내가 쓰는 시의 적절한 표지가 되어주었다. 글을 쓰는 자는 자신의 글이 만들어놓은 운명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섬뜩하면서도 짜릿하다.
이 세상에 많은 시가 있지만 여기 실린 시들은 그야말로 내 취향에 따라 고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내 어수룩한 취향에 뜨거운 관심을 가져준 독자들께 우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40년 동안 끌어안고 살던 것들을 트럭에 싣고 전주에서 예천으로 옮겨 왔다. 작년 초부터 마당과 텃밭이 있는 외딴집에서 산다. 풀이 너무 빨리 자라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풀들과의 전쟁이다. 좋은 분들이 와서 닭장을 만들어준 덕분에 열댓마리 닭들이 쑥쑥 자라고 알도 잘 낳는다. 연못의 잉어 두마리가 사랑에 빠졌다. 수백마리 새끼를 쳐서 나는 수백마리 잉어 새끼의 보호자가 되었다. 연못에 먹이를 던질 때마다 그들의 주둥이가 ㅤㅃㅛㄱㅤㅃㅛㄱ 소리를 낸다. 틈이 나면 차를 끌고 돌을 주우러 다니고, 울타리 가까이 내려오는 고라니의 거동을 엿보고, 봄에는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고, 가을에는 봉투에다 꽃씨들을 받고, 헛간 벽에 무시래기를 내걸고, 말수를 줄이고,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코로나19로 세상의 발걸음이 멈추었거나 세상의 관절이 뒤틀려 있다. 이 와중에 간신히 책 한권을 낸다.
2021년 12월 예천에서
안도현
여기 묶은 시편들은 참으로 게으르게, 그러나 실은 어떤 간절함의 심장에 슬쩍 가닿기를 속으로 바라면서 쓴 것들이다. 그러니 빈둥거리면서, 징징거리면서, 히득히득 웃으면서, 그냥 먼하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자라고 가끔 생각한다. 그 일이 비록 헛것이라 해도 괜찮다. 소리로 그물을 짜는 이 작업이야말로 헛것에 복무하는 일이므로.
8년 만에 시집을 낸다. 강가에 이삿짐을 푸느라 발목이 붉어졌다.
갈수록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고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 말하는 사람일 뿐, 내가 정작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대체로 무지몽매한 자일수록 시로 무엇을 말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돌담을 쌓고 나니 팔꿈치에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통증이 병이지만 몸의 입장에서는 통증도 새로 생긴 식솔이다. 돌을 주워 상자에 담는 일과 풀을 뽑아 거머쥐는 일과 새소리를 듣고 귀에 담아두는 일에 더 매진해야겠다. 손톱에 때가 끼고 귓등에 새털이 내려앉으리라.
나무는 그 어떤 감각의 쇄신도 없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2020년 9월
당신께 들려드릴 시를 고르고 배달하는 수고보다 가외의 소득이 더 많았습니다.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헤아리며 살피듯이 시를 찬찬히 읽을 수 있었고, 시인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시라는 양식이 가닿아야 할 곳과 물러앉아양 할 곳이 어디인지를 곰곰 생각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연을 날리는 일과 시를 쓰는 일과 그리고 살아가는 일이 따로 있지 않으므로 매사에 지극정성을 다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다만 연을 날리다가 보면 연줄을 뚝, 끊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을 날려보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의 언어가 문득 나를 떠나가려 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1999년 1월
콩은 우리 민족의 식생활과 가장 가까운 곡식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부엌에서 재료를 정성껏 다듬어 음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철없던 시절 저는 어머니 치파폭에서 음식을 받아먹으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콩으로 된장과 고추장을 담갔고 간장을 우려냈습니다. 콩나물을 길러 먹고, 콩고물을 만들어 잔칫날마다 가족들은 웃으며 떡을 나눠 먹었습니다. 콩국물을 만들어 국수에 말아먹으며 여름을 났고,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는 장을 담갔습니다.
콩은 하루도 우리 밥상에 올라가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음식을 만들던 노인들이 돌아가시면서 이제 그분들이 만들었던 음식 맛을 아무도 재현할 수 없습니다. 그 음식에 우리의 문화의 총량이 들어 있지만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만 좇으려 할 뿐입니다.
소월과 백석부터 영랑과 그 후의 수많은 시인들이 방언과 모국어를 갈고 닦았고 지금 한국의 시인들도 울진 콩으로 만든 음식과 모국어로 시를 쓰려고 합니다. 시누대가 우거진 죽변길과 절벽을 향해 밀려오는 동해안의 파도, 울릉도로 가기 위해 관리들이 바람을 기다렸다는 대풍헌, 임진왜란의 슬픈 역사가 있는 성류굴,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과 울진 콩으로 만든 음식들이 종이 속에서 되살아나길 기다립니다.
- 2020년 새해를 기다리며 - 여는 글
투명과 불투명의 사이, 명징함과 모호함의 경계쯤에 시를 두고 싶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개판 같은 세상을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은 미적 형식을 얻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말과 문체를 갱신해 또다른 시적인 것을 찾고자 하였으나 그 소출이 도무지 형편없다. 저 들판은 초록인데, 나는 붉은 눈으로 운다.
2012년 5월
이 책의 필자들의 어조는 대부분 차분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페이지를 넘기다가 반드시 한번은 왈칵 눈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이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더 각별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우리에게 가공하지 않은 감동을 선물해주신 필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초판 시인의 말
몇 편의 미발표작을 포함하여, 1980년부터 지금까지 씌어진 것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는다. 젊은 나이에 책을 내는 마음은 즐거우면서도 매우 쑥스럽다.
기왕에 멋들어지게 한마당 놀다 가려면, 앞으로 더 험하게 살아가는 나를 보아야 하리라.
1985년 8월
개정판 시인의 말
물을 건너느라
발목아, 애썼다.
2021년 3월
그때, 나는 20대 초반의 뜨겁고 푸른 청춘이었구나. 세상에 대한 끝도 없는 동경과 문학을 향한 짝사랑과도 같은 열정, 그리고 풋내 나는 치기까지 여기 고스란히 숨어 있구나. 심약하고 부끄러움 많았던 나여, 그것을 감추려고 시를 통해 이 세상과 정면 승부를 걸었던 것은 아닌지. 그 싸움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를 적시고 간 상처들과의 싸움이 있었기에 나는 한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 시집은 그때 터진 코피 자국이다. 그것을 굳이 닦아내지는 않으리라.
이 동화를 읽고 나는 어린이 여러분이 눈이 밝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하고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차근차근 따져보고,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고, 빼앗기보다는 베풀고,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살피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