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근원적인 배경은 유소년을 지배한 어머니의 그늘이고, 내 문학의 성장에 기여한 자양분은 수사관과 법무사로서 현장의 경험들입니다. 어머니가 개설한 땀방울과 한숨은 내 청춘의 필수과목이었습니다. 사건 속에서 이해관계인들은 나에게 단행본이었습니다. 각양각색의 인물군을 책처럼 통독하며 나는 세계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첫 산문집에서 일부러 빼놓았던 혹은 기억의 배반으로 빠뜨린 이야기를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시절의 남은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오늘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어서입니다.
이 책의 절반은 갈등의 한복판에서 당사자끼리 거리를 좁혀가는 방법을 발견하고 실행해온 지난 시절의 고백이고 어제에 대한 자탄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가 통치한 추억의 제국에서 벌어졌던 자전적인 서사를 배치하였습니다. 한 인간이 여러 캐릭터를 소화하며 살아온 궤적을 일인칭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인간’은 나일 수 있고, 한때 내 주변에 흔적을 남겼거나 지금도 머물고 있는 당신일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잊어버린, 잊혀서는 안 되는 그 누구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 쓴 것이 있는가 하면,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도 있습니다. 굳이 실명을 밝힌 것이 있는가 하면, 애써 익명으로 처리한 것도 있습니다. 내 글은 산문과 소설의 중간 어느 지점에 흐리터분하게 서 있습니다. 글쓰기라는 작업이 멈춘다면 내 실존은 공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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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 말을 자주 쓸 때는 마음에 평화가 머물고, 이 말을 잊고 지낼 때는 평화가 깨지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막의 철학자 말씀처럼 세계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 얻은 것(문학적 상상력까지), 어느 것 하나도 나 혼자 힘으로 거저 이룬 것은 없습니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이 세계가, 세계를 구성하는 당신들이 나한테 주는 선물입니다.
가장 가까이서 첫 독자를 자임한 마리아에게 오! 하느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주소서. 내 생에 환희로 찾아온 혜진이, 성원이한테는 백지를 주소서, 그 여백에 사랑으로 채울 수 있도록.
‘작당’의 동인, 그들은 칙칙한 심연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유머를 구사하여 서로가 품고 있는 웃음을 밖으로 끌어냅니다. 그들의 유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자신을 열어놓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끝으로 내 산문이 거처할 집을 지어주신 이용헌 시인과 소울앤북 편집부에도 감사합니다. 진정한 작가는 남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자기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2023년 가을, 부안 선은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