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이면 족하지 했는데 다시 시집을 묶는다. 계면쩍다. 이 계면쩍음이 나중에는 뻔뻔해질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이 두렵지만 불화와 불우 그리고 불후가 진눈깨비처럼 내리는 거리를 홀로 쏘다니며 인간의 삶을 다시 하청받겠다. 내내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불편해서 겨
우 서 있는 듯한 문장만이 내 곁에 있을 것이다.
2019년 7월
지나다니며, 유독 눈길을 끄는 무연분묘 한 채가 있었다.
유족들이 버린 게 아니라 마치,
스스로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 쇠뜨기,
바랭이, 쑥부쟁이로 치장을 한 죽은 자의 집.
바로 옆에서
이게 바로 맑은 초록이라고 말하는 듯 바람에
풀씨 날리는 장관을 연출하는 공동묘지는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유머일까. 너희들의
방은 어디냐고. 그 방의 불빛은 오늘 밤도
환하냐고. 언젠가는 버림받거나,
버릴 공중의 방.
아직 젊은 아우가 죽자, 그나마 어머니는 작은방과
TV와 가구들을 내다 버리고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앉은,
60년대에 지은 낡은 묘지 관리 사무소 앞에서 며칠
전부터 뻐꾸기 한 마리가 날아와 온종일 울다 간다.
어디 알을 잘못 낳아 놓았는지 지치지도 않고
뻐꾸기는 운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말한다. 내가 네 어미란다. 너는
남의 둥지에 방을 빈 뻐꾸기 새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