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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감정을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체 내 도파민(Dopamine), 옥시토신(Oxytocin), 세로토닌(Serotonin), 엔도르핀(Endorphin), 아드레날린(Adrenaline) 같은 화학물질 분비 변화로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 사랑의 감정은 특정 호르몬 분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미인’ 중에 특정 ‘미인’을 보았을 때 그런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은 왜일까? 여러 ‘잘생긴 남자’ 중에 특정 남자에게 특정 여자가 사랑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첫눈에 반한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나는 사람이 첫눈에 반하는 까닭, 그러니까 특정 사람을 보았을 때 사랑 호르몬이 분비되는 까닭을 ‘연인 자신들은 비록 자각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이 오랜 세월 서로를 찾고 기다려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인데, 상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내가 긴 세월 찾고 기다려온 사람이에요”라고 상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나는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가 여러 번 설명하니 어렴풋이 알아보게 되는 것은 사랑일까.
또 첫눈에 서로 오래 찾고 기다려 온 사람임을 알아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러니까,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그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상대방에게, 또 상대방은 나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주게 될까. ‘365번째 편지’와 ‘못생긴 여자’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사는 동안, 푸른 강물에 발을 담그면 온몸이 물빛으로 물들 것 같던 날들이 있다. 리에는 그 푸른 강물에 발을 담그는 대신 강물을 모두 퍼내서 아무렇게나 쏟아버렸다. 넘실대던 강물이 마르자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뛰어오르던 물고기는 사라졌고, 허옇게 드러난 강바닥엔 깨진 유리 조각과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마른 나무 둥치가 뒹굴었다. 그리고…, 물빛으로 물들었어야 할 푸른 몸은 흙빛이 되어버렸다.
제 잘못을 떠넘기며 원망할 사람, 하다못해 자기 불행을 위로해 달라고 울면서 매달릴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리에는 그처럼 마른 여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사랑을 잃어서 불행한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세상이어서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응원할 수 없고, 잃어버린 사랑을 위로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리에의 사랑’은 스스로 사랑을 묻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고민 끝에 “사랑한다”고 고백할 것이다. 그 사랑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남자는 열렬히 사랑했던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못마땅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각자 결혼한 이후에는 단 한 번 만난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가 오래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사랑했더라면 ‘사랑한다’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내 고백으로 그 사람과 우정마저 잃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을 먼 곳에 두고, 밋밋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간 그는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이치카’는 그 사람의 이야기다. |



| 사람이 잊지 못할 슬픔이나 고통은 없다고 들었다. 세월은 강철을 녹이고도 남을 만큼 강하다고 했다. 그 어떤 슬픔이나 기쁨도 세월 앞에서는 밋밋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사람이 잊거나 이기지 못할 슬픔이 있음을 안다. 죽어서도 잊거나 이기지 못할 슬픔에 대해, 시들지 않고 떨어지는 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대로 이야기할 만큼 내 눈이 밝지 않다는 게 늘 문제이기는 하다. |
| 역사만큼 민족과 국가의 테두리에 갇힌 영역도 드뭅니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는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 말입니다. 이 작품 속 인물은 누구나 주인공입니다. 도모유키는 명외이고, 명외는 유키코입니다. 유키코는 히로시이며 그의 딸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거센 파도에 가족을 잃고, 미래를 잃고, 일상을 잃었습니다. 모두를 잃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동일인입니다. 조선의 전쟁 영웅 이순신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
| 사람살이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쯤이야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아주 사소한 것일 때, 그럼에도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우울해집니다.
사람살이는 점점 나아지고, 합리적으로 변해간다고 합니다. 글쎄요... 그렇습니까? 이 책에 실린 소설은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
| 시인은 바람을 따라 끊임없이 흐르는 모래이고, 일상인은 그 모래밭에 뿌리내려야 하는 풀입니다. 모래는 끊임없이 흐름으로써 존재하고, 풀은 정착함으로써 존재합니다. 한자리에서 만난 풀과 모래의 불행인 것입니다. |



| 1.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 살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산자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10리쯤 가야 했다. 어느 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늑대를 만났다. 늑대와 나는 30미터쯤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평소 “늑대를 만나면 벽에 기대어 서 있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늑대는 일단 먹잇감을 넘어뜨린 후에 잡아먹는데, 넘어지지만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겁을 먹어 나무 위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소나무를 꼭 붙들고 서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늑대가 더 나타나 다섯 마리로 불어났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늑대들이 숲속으로 순식간에 달아났다.
2.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충 보기에도 몸무게 80kg이 넘어 보이는 여성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왼쪽으로 걸어갔다가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왼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곳도 찾지 않는다”고 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냐”고 물었더니 “길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찾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살펴 가시라”고 했더니 내게 욕을 했다.
3.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쳤다. 한 사람이 다짜고짜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사람이 따졌다. “왜 때려?” 그러자 때린 사람이 말했다. “왜긴? 너 잘 되라고 때렸지.” 맞은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를 아세요?” 때린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알아. 생판 남이지만 서로 도와야지.”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황당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있다.
‘미인 1941’의 인물들은 위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



| 그들 모두는 북성로의 나그네였고, 세상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혹은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제 삶의 주인이고자 했으며, 다만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
| 나는 아버지를 미화하거나 복고를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의의 가치를 훼손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 된 자, 남편 된 자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만 가지 슬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내 아버지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버지들과 남편들이 오직 근면과 재능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남자가 성실과 정직만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따뜻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느라 만 가지 굴욕을 감내하셨던 내 아버지께, 만 가지 고통을 감내하는 많은 아버지들께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
| 나는 끝내 자신을 조선의 신하로 규정하는 안철영에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이 아이들의 어미입니다"라고 말하는 유이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습니다. 조선 성씨를 버리지 않는 선비의 절개가 아니라 '아시타(明日, 내일)'라는 일본 이름을 짓는 유이화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낯선 당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 돌아오고 싶었지만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 여전히 타향을 떠도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좀처럼 '고향'을 잊지 못하고 서성대는 우리를 돌아보는 작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 내 잘못에 대해 변명하고 도망치는 것 또한 잘못이겠지만,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소설 《진실한 고백》은 그런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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