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앞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돌아보면 퍽이나 오래 되었다.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수원 역 맞은편에 제법 널찍하게 자리 잡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하루 종일 와르릉와르릉 꿈틀대고 있을 때였으니. 참 오래도 되었다. 청바지 차림에 카메라가방을 둘러맨 채 고사리 손 같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서 주말이면 꼭이 그 널찍한 시외버스 터미널의 어딘가에 서 있곤 하였으니.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물론 수원 화성이 지금처럼 복원도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이다.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았을 뿐더러, 한겨울이면 눈보라까지 휘몰아쳐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아련하다.
한데 주말이면 한사코 왜 거길 가고자 했었는지. 또래 아이들과 놀기에 바쁜 어린 아들 또한 군말 없이 따라나서 주었는지. 지금도 알 길이란 없다.
그렇다고 무슨 목적이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주말이면 수원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서 무작정 길을 나서고는 했다. 그때는 왠지 그처럼 길을 나서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밖에는 딴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사노라면 그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낯선 감각을 받아들여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왕의 노래>는 처음 그렇게 가슴밭에 씨앗이 뿌려졌다. 그리고 나선 하염없는 기다림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창 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향기로 술을 빚으면서, 씨앗이 움터 오르기만을 꽤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으레 광화문 앞을 지나게 된다. 부암동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원고의 첫 장을 썼던 지난해 겨울에도, 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르지 않다.
물론 그 사이 벌써 몇 번이나 해가 바뀌었다. 정권 또한 바뀌어 새 정권이 다시 들어섰다. 새로이 시작을 다짐하는 팡파르도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변함없이 만나게 되는 낯익은 것들이 있다. 그 사이 해가 몇 번이나 바뀌었어도, 정권 또한 다시 바뀌어 새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풍경들이 그것이다. 길가를 점령한 채 멈춰서 있는 버스와 날선 시선들이다. 광장에 모여든 숱한 얼굴들이다. 무수한 눈동자들이다. 간절한 함성들이다.
그러한 풍경들을 속절없이 목격하게 되면서, 나는 오래 전 그 날의 기억들로 하루하루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간 꽤 긴 시간동안 가슴밭에만 묻어 두었던 씨앗이 마침내 움터 오름을 지켜보았다. 비로소 왕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꿈속의 꿈이라서 꿈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간절한 그런 꿈일망정….
정조가 꿈꾸었던 세상은 그렇게 첫 줄이 쓰여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