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제대로 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외면하는 가운데, 저자는 서른 살이나 어린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시절에 이 책을 썼다.
파렴치한 정치와 역겨운 세상살이와 미련한 사람에 대한 그 모든 환멸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그는 불가항력의 역사와 자연의 힘을 모르지 않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의 기운과 사랑의 힘을 찾아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방황하고 있었다.
그가 마주칠 때마다 ‘바다’는 대자연의 본능으로 으르렁대지만, 저자는 자기 내면의 출렁임으로 거기에 맞선다. 사고와 언어의 힘만으로.
물론 사랑에 기대기는 했다.
비제 르 브룅은 앙투아네트 왕비의 초상을 서른 점 넘게 그렸다. 또 여성화가로서 처음으로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비제 르 브룅은 절대왕정 말기에서 혁명기로 넘어가던 시대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재색을 겸비’한 화가로서 귀족들 사이에 인기가 대단했다. 그런만큼 질시와 비방에 시달렸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면이 있다. 게다가 그녀는 정치적으로도 구시대적 관념에 사로잡혀 왕조 시대를 아쉬워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외면당했다. 혁명은 한두 해로 끝나지 않았고 완전한 민주주의 공화정이 들어서기까지 반세기 넘게 지속되었다. 따라서 19세기의 정치적 혼란기에 그녀의 시대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공화정이 자리잡아가면서 왕정시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녀도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비제 르 브룅은 특히 사진이 없던 시절에 역사적 초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녀의 시대에 일급 화가들은 사실적 인물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이상적으로 각색한 모습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희귀한 초상의 가치가 날로 높아지면서 그녀는 당대의 최정상급 초상화가 다비드, 그뢰즈, 켕탱 드 라 투르 등에 필적하는 화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비제 르 브룅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부쩍 늘었다. 필력이 뛰어난 프랑수아즈 피트 리베르 같은 철학자이자 문인이 그녀의 새로운 평전을 발표하고(2001년), 영어권에서도 별도의 전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작들은 거의 한 세기 전에 출간된 초기 저작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역자후기
이 책은 새로 펴내는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의 2014년 개정 증보판이다. 보다 ‘인간적인’ 생활을 찾아, 농촌과 서점은 어떤 모습으로 만났을까? 지금 유럽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독서운동이 꿈틀대고 있다. 농촌의 활력을 도모하는 지자체로서는 정치적 실험이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는 지지하고 동참하는 문화운동이다. 도서관, 대형서점 같은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장터와 이웃 같은 곳, 작은 찻집이나 미술관이나, 품위 있는 서재나, 재미있는 놀이터 같은 곳으로, 양떼와 우마가 어슬렁거리는 풀밭과 나무그늘 밑에서, 책을 만나고 구하는 그런 전원적인 이미지 속에서 책을 만난다. 유럽 책마을은 도서문화 또는 독서문화라는 것이 다양해지는 커다란 실험장이다.
인간가족의 일상과 희로애락을 한곳에 …
급속히 사라지는 흑백사진 절정기의 기록
<인간가족>은 사진전시회로서는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지고 기념비적인 것이 되었다. 지구촌 인간가족의 일상과 희로애락을 보여준다는 ‘휴머니스트’ 사진의 기치 아래 많은 사진을 한 자리에 모았다.
처음 전시회를 시작했던 1955년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이후 지구촌이 다정하기는커녕 가장 차갑게 얼어붙던 ‘냉전’의 시대였고 빙하기 이후로 지구촌에서 사람들이 서로 이때처럼 증오하고 배타적이며 호전적으로 살았던 때도 드물었을 것이다.
이 사진집에 우리나라 6.25전쟁 때의 사진들 가운데 몇 점이 수록되었는데 전쟁의 실상보다는 여성사진가로 아시아에서 크게 활약했던 마거릿 버크화이트를 비롯해 어머니의 모정이나 유교식의 조상숭배 등을 소개했다. 매우 보편적이며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였지만 가장 중요한 국민의 실생활의 고통과 난맥상은 외국 사진가들이 포착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 사진전은 이른바 꾸밈없이 뒷손질로 사진을 조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촬영한다는 솔직한 사진을 주로 선정했다. 물론 사진가 자신들이 현실을 아름답게 보려는 시선이 압도한다. 이와 같은 전통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사진가들의 작업이 망라되었다. 또 이 사진전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드미트리 케셀, 베르너 비숍 같은 사진가들도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 훌륭한 사진가들이 적지 않았다. 1950년대는 한국사진의 특별한 도약기였다. 그러나 이들을 소개하는 통신사나 잡지나 사진앨범 등 매체가 거의 없어 조직자들이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가족>은 급속히 사라지는 흑백사진 절정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사진들은 사진의 기록성을 강조했지만 그 사진 고유의 서정성과 탐미성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많은 관객은 사진의 역사적 증언 못지않게 그 흑백 이미지의 마법 같은 매력에 공감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전시회는 전체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합’이 내세우는 정의를 세계의 지배적 가치관처럼 내세웠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냉기가 돌던 시대에도 지구촌 많은 사람이 따뜻한 인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은 태곳적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