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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구, 고맙구요.
본서는 21세를 맞이하여 지난 세기동안 한국사의 연구성과를 총체적으로 정리해 본 책입니다. 본서를 통하여 저의 현위치를 규정지어보고 우리의 미래상을 투영해보고 싶었습니다.
역사연구동향의 변화는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번쯤 주목해 볼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본서는 역사학도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저술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역사학의 흐름, 연구방법론 등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역사 왜곡과 관련하여서는 민족주의론과 근대화론 등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구요.
(2002년 6월 27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



| 1945년 9월에 작고한 동방(東方)김세환(金世煥, 1889-1945)은 해방을 얼마나 그리워 했을까. 기쁨도 잠시, 해방된 지 1달여만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참으로 통곡할 일이요, 가슴 아픈 일이다.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던 김세환의 아버지 김동우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김세환은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한국 민족운동사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한제국시대 관립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수원상업강습소, 삼일여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1941년에는 수원상업학교를 설립하는 등 수원지역 근대 교육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에는 지역민족운동가로, 사회운동, 신간회운동, 수원체육회 활동 등에도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세환은 어려서부터 수원 종로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열린 기독교 민족주의자로서 더욱 주목된다. 김세환은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중국어과을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경제학과를 다닌 유학파로서 최고의 지성 중 한 분이었다. 그런 그였으므로 전국의 기독교지도자들과 더불어 수원의 삼일여학교 학감으로서 3·1운동 준비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 서울 YMCA 간사였던 박희도와 연계하여 경기도의 수원, 이천, 남양, 충남 해미, 공주 등지를 종횡무진하며, 경기도와 충청도지역의 연락책으로서 일익을 다하였다. 수원 종로교회의 임응순, 그리고 서울의 박희도, 경기도 남양의 동석기, 이창회, 충남 홍성의 김병제, 공주의 현석칠 목사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독교 목사 또는 교인들이었다는 점이다. 김세환은 수원지역의 만세운동 뿐만 아니라, 3·1운동의 지도부의 한사람으로서 3·1운동을 전국적으로 기획 조직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3·1운동의 중심인물들 가운데 일부는 식민지 치하에서 변절의 길을 걷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세환은 끝까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였다. 김세환은 민립대학 설립운동, 신간회운동 등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진보세력과 적절한 타협을 통하여 신간회에 참여하였고. 일정 기간 수원지회장으로도 일하였다.
한편 김세환은 1939년 수원 삼일학교가 새롭게 구성되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수원 갑부인 최상희를 움직여 일만원을 희사하게 하여 폐교 직전의 학교를 구하였다. 아울러 1941년에는 홍사훈을 설득하여 수원상업학교(현 수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해방되기까지 교육에 힘쓰다가 해방된 직후인 1945년 9월 26일에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김세환은 수원지역뿐만 아니라 3·1운동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다. 아울러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진정한 교육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세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료의 부족에 따른 연구의 미진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이에 광복80주년을 계기로 김세환의 순국 8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자료의 발굴에 매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김세환의 제적부, 토지대장, 선교본부의 기록, 대한제국관보, 조선총독부관보, 후손들과의 대화 등을 통하여 김세환의 민족운동을 좀더 심도있게 밝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김세환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연구들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 책의 간행에는 기존 연구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황민호교수, 김권정 박사 등의 개척적 연구업적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자료 발굴에 도움을 주신 김승태목사, 한규무교수, 제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김정현, 국가기록원 박종연, 국가보훈부의 정명희님과 수원박물관과 독립기념관, 국가기록원에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한동민, 이동근, 김경표 등 연구자들과 윤창혁 등 김세환지사의 유족들, 조형기, 박영양, 윤의영, 조성진 등 여러분들의 격려 또한 잊을 수 없다. 끝으로 이재준 수원시장, 김봉식 수원문화원 원장, 김현광 전 수원문화재단 이사장 그리고 항상 응원과 지원을 해주시는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대장 한지성의 후손인 한춘희여사, 최재형기념사업회의 안병학 사장께도 이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2025년 8월 문화당에서 - 발간사 |



| 반갑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 특히 만주지역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지명 등 모든 것이 저에게는 생소했습니다. 보다 친밀해지기 위해서 현장을 답사했고 답사하는 동안 선열들의 땀과 숨결과 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서의 특징은 현장 답사와 사진 등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책보다 실증에 치중한 것입니다. 한번 만주를 방문하는 분들께 꼭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항일유적지를 조사, 또는 답사하는 분들께서는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요
앞으로도 만주, 러시아지역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할까 합니다.
(2002년 6월 27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
| 올해는 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한지 1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아울러 한국과 러시아간에 무비자협정이 맺어진 첫해이기도 하다.
학자로서 이를 기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러시아의 극동 연해주를 방문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판단되어 그 중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여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발간하고자 생각하였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이 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방문하는 분들에게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다.
제목에서처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혁명광장일대, 전망대부근, 개척리부근 등 몇 개 동선으로 나누어 걸어서 답사하도록 꾸며졌다. 기점은 한국인들이 주로 투숙하는 현대호텔을 기점으로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관광하다보면 답답한 것이 교통체증이다. 사실 걸어 다니면서 보면 금방 볼 수 있는 지역들을 버스 안에서 답답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반 여행객들은 잘 모른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생생한 모습들이 이 한권의 책을 통하여 여러분께 생동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
| 본서는 지난 10년동안 필자가 러시아 지역의 항일운동유적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가는 길목마다에서 잊혀진 항일운동의 역사와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넋을 함께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이 점이 제가 바로 이 책을 쓰게 동기입니다.
(2002년 6월 24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
| 본서는 지난 10년동안 필자가 러시아 지역의 항일운동유적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가는 길목마다에서 잊혀진 항일운동의 역사와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넋을 함께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이 점이 제가 바로 이 책을 쓰게 동기입니다.
(2002년 6월 24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



|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공화국 극동지방 남동쪽 끝에 있는 연해주의 중심도시이다. 동해에 면해 있으며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반도의 남단, 금각만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태평양 방면에서의 이 나라 굴지의 항만도시이다. 항구는 11월부터 3월까지 결빙하지만 쇄빙선을 이용하여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이름은 “동방(보스토크)을 정복하자(블라디)”라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한다. 중국명은 하이첸웨이이다. 1860년에 러시아 해군기지로 개항하여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극동정책이 활발해짐에 따라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 중요성이 높아졌다. 20세기 초 시베리아 철도의 개통으로 러시아 중심부와 육로로 직결되면서 철도의 종점으로서 국제적 의의도 높아졌다. 그리고 한국독립운동사와 관련하여서도 한국독립운동의 최대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는 안중근 의사의 혼이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이등박문을 처단하기 위하여 고민하며 걷던 해변이 있으며, 하얼빈으로 출발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역이 있다. 또한 제2의 장보고로 블리우는 무역상이자 거부, 해조신문 사장 최봉준을 그려볼 수 있는 곳. 크라스키노에서는 안중근의 단지동맹비와 안중근 의사의 든든한 후원자 최재형과 간도관리사 이범윤, 13도의군 총사령관 류인석 유적들이, 그리고 우수리스크에는 헤이그 밀사였던 이상설, 발해연구가 장도빈 등의 역사가 남아 있기도 하다.
하바롭스크는 아무르강이 흐르는 역사적인 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이다. 이곳에서 이동휘, 김알렉산드라 등은 한인사회당을 결성하였으며, 가열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낙동강의 저자로 알려진 조명희 등 지성인들은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에 저항하여 처형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크라스키노, 하바롭스크 등 극동지역은 이처럼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맺어갈 아름다운 곳이다. 1990년대 초부터 이 지역을 거의 30년 동안 방문했던 필자에게는 이곳은 마음의 고향과 다름없는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수가 많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적절하게 안내해 줄 책자가 없어 안타까웠다. 이에 필자는 이 지역의 러시아의 명소와 한국인의 숨결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책자의 간행을 구상하게 되었다. |



| 임면수는 1873년 6월 10일(음) 수원시 성안 보시동(북수동), 북수리 299번지에서 임진엽과 송씨 사이에 2남으로 출생하였다. 일찍이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그 후 한국이 근대화되자 근대적인 실용적인 학문에 관심을 갖고 수원 양잠학교에 입학, 1903년 졸업하였고, 일어공부를 위하여 화성학원에 진학, 1905년 4월 26일 졸업하였다. 그리고 1904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수원에서 멕시코이민 모집 대리점을 운영하였다.
구한말 임면수는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근대학교인 삼일학교의 설립에 기여하는 한편, 교감 및 교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경기도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기호흥학회 수원지부 평의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구한말 상동청년학원에서 활동한 그는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자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하여 1912년 2월 만주 서간도 환인현 횡도천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만주합니하에 개교한 신흥무관학교의 다른 이름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였다. 1910년대 중반에는 부민단의 결사대에 속하여 활동하였으며, 3·1운동 이후 일제의 간도출병으로 통화현에서 해룡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의해 체포, 투옥되었다.
임면수는 구한말에는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1910년대에는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던 인물이었다. 수원출신으로서 수원에서 활동하다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로서 임면수의 민족운동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그런 유형의 인물은 별로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일어학교 출신으로서 일본어에 능하여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높이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면수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였다. 이에 광복80주년과 멕시코 한인이주 120주년을 맞이하여 조그마한 책자라도 발간하여 임면수의 삶의 여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책자 간행에는 성주현, 정길화, 김재기교수를 비롯하여 국가보훈부의 정명희, 박준현, 독립기념관의 임공재, 김용진 그리고 양훈도, 한동민, 박철하, 이동근, 김찬수, 김경표 등 수원지역의 연구자들과 한준택, 김영균 등 필동임면수선생기념사업회 및 삼일공고의 김동수, 장성은 교장을 비롯한 삼일상고의 박상풍,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김정현 등 여러 선생님들과 조형기, 박영양, 이수원, 박희정, 조성진, 윤의영, 김영길, 최형국 등 평소 가까이 지내는 수원시민들, 그리고 수원문화원 김봉식원장님과 임면수 지사의 손자 임병무님의 무언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아울러 독립기념관과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자료 제공과 자문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임면수를 비롯한 지금까지 잊혀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보다 많이 조망되기를 바라며, 독립운동가들의 지향점이 조국의 독립과 더불어 인류애의 상징인 정의와 인도와 평화에 바탕한 진정한 휴머니스트 국가였임이 밝혀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5년 6월 문화당에서 - 책을 내며 |



| 30여년 세월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며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잊혀진 것들을 복원하며, 새로운 연구방법들을 추구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이는 간단한 일들이 아니었다. 이에 동학들의 분발과 후학들을 기다리며, 앞으로 좀 더 노력하며, 연구과제들을 심층화 해보고자 한다. 이번에 책자에 담은 것은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것들인데, 아직 설익은 과일과도 같다. 책 제목을 [한국독립운동사의 반성과 과제]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그동안의 필자의 연구성과를 정리해보고, 반성을 토대로 새롭게 집필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선친 박영석 교수의 뒤를 이어 만주, 러시아 등 대륙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기울여 왔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지만 문제점을 극복하고 이를 실천하여 완성하지 못하였다. 앞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한국독립운동>, <동아시아와 만주지역 한인독립운동>, <한인디아스포라와 한국독립운동> 등, 좀 더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국독립운동사가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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