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속에 숨어 있는 우리말의 세계
국어사전을 찾다보면 처음 보는 낱말을 만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자주 쓰던 낱말에 낯선 뜻이 덧붙어 있는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기억의 저장고를 늘리는 재미와 함께 그동안 우리말을 너무 찬밥 신세로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누리’가 세상을 뜻하는 말이란 건 알아도 우박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방망이’가 커닝 페이퍼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으며, ‘보자기’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러 주면 눈이 둥그레 질 사람이 많을 것이다. ‘쥐새끼’가 물고기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사실까지 덧붙이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싹 다가앉을지도 모르겠다.
국어사전 속에는 무엇보다 옛 풍습이나 음식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닭김치’니 ‘상수리밥’이니 하는 낱말이 나오는가 하면 ‘뛰엄젓’이라는 낱말을 통해 개구리로 젓을 담가 먹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참새로 만든 ‘참새만두’ 가 있다는 사실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듯 국어사전은 낱말 풀이 말고도 뜻밖의 지식을 얻는 재미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평소 국어사전을 들춰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한번쯤 국어사전을 펼쳐 보기를 권한다. 그동안 모르던 낱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예전에는 널리 쓰였음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사전 속에 갇혀 숨이 끊어질 때 만 속절없이 기다리는 낱말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움을 느끼기라도 한다면 더 바 랄 나위가 없겠다. 그렇게 해서 날로 빈약해져 가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고,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을 다룬 책들이 서점에 많이 나와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며, 내 가 작업한 결과물은 그러한 성과의 바탕 위에서 한 발짝 조금 앞으로 밀고 나아 간 것일 뿐이다. 가능하면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끝으로, 이 책에 실린 낱말과 뜻풀이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바탕으로 했음을 밝혀 둔다. 한 나라의 국어사전을 대표하기에는 모자라는 점도 있지만 국립 기관에서 펴낸 사전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머리말
역사 이해는 사실과 해석을 양 축으로 한다. 이때 우선되는 건 당연히 사실이다. 사실 자체가 틀리면 엉뚱한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므로. 역사는 기록자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리 기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헌 자체가 완벽한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짜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럴 때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오류를 피하자면 같은 인물이나 같은 사건을 다룬 다양한 기록을 찾아 비교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뒤늦게 발견된 사료를 통해 보완이나 정정하는 작업도 필수적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기존에 사실로 인정되었던 게 오류로 밝혀지기도 한다. 이렇듯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전은 정확성이 생명이다. 그래서 정확한 사실로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 하고, 소수의 학설보다는 다수가 합의한 통설을 따라야 한다. 물론 통설도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통설을 바탕으로 기록한 다음 소수 의견을 부기할 수는 있다. 나아가 통설이 틀렸다고 판명되면 수정해야 한다. 개정판이 계속 나와야 하는 이유다.
국어사전 안에 역사와 관련한 표제어가 무척 많고 그와 관련한 인명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수록했다. 국어사전이 백과사전 흉내를 내는 바람에 그렇게 됐을 텐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역사학자가 아닌 탓에 풀이를 하면서 수많은 오류를 생산했다. 이래서는 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비롯한 여러 백과사전에도 오류가 많지만 그걸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많다. 국어사전이라는 특성상 핵심만 짧게 요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잘못 요약한 것도 많이 보인다. 2차 사료는 오류가 섞였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반드시 1차 사료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삼국시대를 다룬 내용이라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원본을 봐야 하고, 마찬가지로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만 들춰봐도 오류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걸 언제 일일이 살펴보고 있느냐고 한다면 그냥 한숨만 쉬는 도리밖에 없다. 편찬자가 바쁘고 힘들면 감수자를 통해서라도 그런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역사 용어까지는 몰라도 인명이나 지명은 표제어에서 모두 빼면 좋겠다. 그렇게만 해도 국어사전 안에 담긴 수많은 오류 중에서 절반은 줄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감당하지 못할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국어사전은 국어사전답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에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 개정 작업을 진행하며 표제어 항목에서 전문 용어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내 눈에 띈 것들만 정리했지만 그 밖에도 더 많은 오류가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이 낱말 창고가 아니라 오류 창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하나 마나 한 소리일 테다. 단순히 오류만 지적하는 데 머물지 않도록 간략하게나마 관련 사실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으며, 그래서 이 책이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책에 실린 글들을 바탕 삼아 관련 역사책들을 찾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과욕일 테고. 다만 역사 기록이란 엄정한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과 국어사전의 기술 역시 엄밀함과 정확성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국어사전 안에 담긴 오류들을 찾아 정정하느라 모처럼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긴 하나 그보다는 제대로 된 방식의 공부를 하고 싶다. 제대로 된 역사를 탐구하고자 애쓰는 연구자들에게 늘 고마움을 갖고 있다. 좋은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조금 더 분발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이 국어사전 편찬 역사에 작은 발자국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들여다본 국어사전은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한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국어사전들을 일부 참고했다.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풀이를 바탕으로 했고, 같은 표제어를 나란히 실을 때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순서로 했다.
박일환 씀
구미시에 상장리가 있고, 수원에 광교초등학교와 서울에 목동중학교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할 이유가 뭘까? 게다가 ‘창원 지방법원 진주지원’, ‘강릉 상공회의소’, ‘금융안정위원회 아시아 지역 자문그룹’, ‘괴산고추축제’ 같은 게 국어사전 표제어에 어울릴까? 그뿐이 아니다. 온갖 유행어에 이른바 청소년들이 웹상에서 주고받는 외계어에 가까운 신조어, 이상한 줄임말까지 다 끌어모으고 있다. ‘ㅤㅂㅞㄺ’, ‘즐’, ‘ㅤㅁㅝㅇ미’는 기본이고, 다음과 같은 말들도 실려 있다.
¶센터^미모(center美貌): 주로 아이돌 그룹 내에서 미모가 가장 빼어난 멤버를 이르는 말.
¶츤데레남(tsundere男):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를 이르는 말.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뷰알못: ‘뷰티를 알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화장이나 머리 손질, 몸매 관리 따위와 같이 외모를 꾸미는 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별다줄: ‘별것을 다 줄인다’를 줄여 이르는 말.
이뿐만 아니라 ‘무개념녀’나 ‘민폐녀’처럼 차별과 혐오에 바탕을 둔 말들도 있다. 외래어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이오 패리티 인터럽트(I/O parity interrupt)’, ‘스프링보드^코르크스크루^레그^드롭(springboard corkscrew leg drop)’, ‘로크리안^내추럴^식스^스케일 (Locrian natural six scale)’ 같은 게 과연 우리 국어사전에 어울리는 말들일까? 이런 걸 모아놓은 사이트 이름이 <우리말샘>인데 말이다. 이런 말들이 전문가 감수를 거쳤다며 실려 있는 걸 보면서 과연 <우리말샘>을 국어사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말샘>의 역할이 있다면 일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말들을 모으는 것이겠고, 그런 수집 노력을 바탕으로 잘 추리고 정리해서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만드는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더 이상 비판할 마음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 책에는 <우리말샘>에도 실리지 않은 말들을 포함해서 기존의 국어사전에서 만날 수 없는 말들을 담았다. 나름대로 찾아서 정리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국어사전의 호명을 기다리고 있는 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 바람이 있다면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국어사전의 어휘 목록을 늘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참고로 이 책에 실린 낱말들은 2021년 10월 31일까지 확인한 것들이다. 지금도 <우리말샘>에는 꾸준히 낱말들이 올라오고 있으므로, 내 작업 이후에 새로 등재된 낱말들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젊어서는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굴리려고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겨우 옆으로 살짝 밀어놨을 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겨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겨우를 위해
당신이나 나나 참 애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겨우를 갸륵하게 여기기로 했다
나이 육십을 넘긴 뒤부터
겨우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으니
시를 쓰면서 늘 생각하는 비유란
결국 결합이다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를 접붙여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그런 게 시의 기초라고 배웠다
길을 가다 음식점 간판에 붙은
‘포장 판매’
네 글자를 만났다
포장과 판매의 결합
거기서 새로운 의미, 예전에 없던 상품이 탄생했다
당신에게 가는 이 시집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계속 시를 쓴다면
결합이 아니라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동안 너무 많이 붙어먹었다는 것부터 고백해야 한다고
저는 이런 것도 시가 되나, 시를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시는 무엇보다 자유롭게 열린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상상력을 좁은 울타리에 가둬 두면 얼마나 답답할까를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도 제 시를 자유롭게, 읽고 싶은 대로 읽어 주면 좋겠습니다. 재미없으면 건너뛰고 다른 시를 읽어도 되고요. 이제 이 시들은 제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의 것이니 마음껏 갖고 놀며 즐기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시 세상에 굴러다니는 시들을 주우러 가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를 찾아 나선 독자 여러분과 어깨나 머리를 부딪치면 “어이쿠,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맨 앞에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실었다. 일단 현대사의 흐름을 알아야 지금 이 순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겪는 비극이 언제 어디서부터 비롯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책에서 다룬 문학작품과 영화들은 비평적인 차원의 접근보다는 내용 소개를 충실히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가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세한 소개를 통해 독자들이 아프가니스탄의 현실과 그들의 고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건조한 역사서보다 영화와 문학작품이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겪어야 했고, 힘겹게 헤쳐온 비극적인 삶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가 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궁금하게 여기며 알려고 애써야 할까? 그건 아프가니스탄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죽고, 그보다 훨씬 많은 난민이 발생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의 존엄이 가장 위협받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인류애까지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그게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당장 그들을 구원하거나 도와줄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을 내올 수는 없더라도 수천 킬로 수만 킬로 떨어진 먼 나라에서도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들을 간직하고 나누려는 노력들이 작지만 소중한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땅에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답게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반드시 그런 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책머리에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외면하고 덮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죄악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밸혈병 환자들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은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들에 대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의인 동시에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을 뉘우치게 하는 일이다. 삼성반도체와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금이라도 진실 앞에 머리 숙이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것만이 더 커다란 죄악을 짓지 않는 일이다.
하나씩 진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쉽게 끝날 수 없을 것이다. 삼성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든 노동자들이 스스로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책이 그러한 길로 가는 길에 작은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 박일환.반올림, 「책을 내며」중에서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서로 같으면서 달랐습니다. 또래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고민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곤 했거든요.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당혹감을 안겨 주는 친구부터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는 친구, 한없이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 삐딱하게 엇나갈 생각만 하는 것 같은 친구 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시간을 채워 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다 그래”와 같은 말 대신 다양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시로 담아 보려 했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면서도 자신과 세상을 잠시나마 돌아보며 생각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김소월 하면 「진달래꽃」과 「산유화」나 「초혼」 정도의 목록에서 이야기가 그쳐야 하고, 민요조의 율격으로 서러움과 그리움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하는 평가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소월의 시를 새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 책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달래꽃」과 「산유화」의 감옥에 갇힌 소월을 구출해 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소월 시의 진폭은 매우 넓다. 시의 형식은 물론 시로 그려낸 풍경과 내용이 무척 다채로운 편이다. 상실감과 비애감이 기저를 이루고 있긴 하나,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면모를 무심하게 넘기는 바람에 우리는 지금껏 소월을 너무 일면적으로만 평가해 왔다. 식민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김소월이 뚜렷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경향의 작품도 썼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편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의 손을 떠나 대중 앞에 제대로 소개되고 널리 읽히지는 못한 편이다. 이 책에서는 널리 알려진 시는 물론 그렇지 못한 시 중에서도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정직한 발걸음으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봄처럼 세상 만물을 따스히 감싸주는 손길은 되지 못할지라도 깜냥껏 제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 동시를 쓰는 일도 그런 몫 중의 하나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두 번째 동시집을 묶었습니다.